"짜장면 시키신 분~."
만일 내가 이동전화 광고를 찍었다면, “저요~.” 손을 번쩍 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남쪽 땅 마라도를 찾아갔다. 제주의 모슬포항에서 떠난 여객선은 이른 시간 때문인지 승객이 많지 않았다. 흥분인지 설렘인지 모를 야릇한 감정이 자꾸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시원한 실내 공기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답답해 2층 갑판에서 온몸으로 해풍을 만났다. 마라도에는 짜장면 집이 여럿 있었다. 섬의 규모를 생각하면 많은 축에 속했다. 관광객이 주 고객인 것 같았다. 마라도가 천연기념물(423호)인 줄은 그 길 위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더 특별한 섬으로 다가왔다. 주위 경관은 매우 아름다웠다. 걷는 내내 영화 속의 주인공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애초엔 우리나라에서 지표면이 가장 낮다는 가파도를 거쳐 마라도로 들어가려 했다. 양손에 든 떡을 모두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계되는 배편이 없었다. 그 덕에 시간이 늘어나 마라도를 여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잡동사니 생각들이 머리에서 대책 없이 쏟아져 내렸다. 후련하게 비워내고 제주로 돌아왔다.
제주에서 해돋이를 보겠단 생각으로 이른 시간에 살그머니 마을 안의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왔다. 마침 노인 한 분을 골목길에서 만났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바닷가로 나가려면 어느 길로 가면 되죠?”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러나 나는 계속 눈을 껌뻑거리며 “예? 예?”를 반복했다. 손짓 발짓으로 대충 길을 이해한 채 감사하다며 인사를 꾸벅했다. 제주 사투리는 외국어보다 더 알아듣기 어려웠다.
마을길을 어슬렁거리다 만난 제주 전통가옥이 반가워 다가갔다가 송아지만 한 개가 갑자기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 옆에는 한 남성이 느긋하게 현무암으로 돌담을 쌓고 있었다. 꽤 여러 번 제주를 왔어도 돌담 쌓는 광경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양해를 구하고 자리까지 잡고 앉아 구경을 했다.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단번에 화산석을 척척 쌓아 올리셨다. 별 것 아닌 것처럼 쉬워 보이지만 이게 기술이란다. 바람 많은 제주에서 담이 무너지지 않도록 쌓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보았다. 젊은이들이 선호하지 않는 일이다 보니 기술자가 점점 줄어들어 인건비도 많이 올랐다고 한다.
오름 투어를 했다. 이동시간을 줄이려고 렌터카를 빌렸다. 아부오름, 동검은오름,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꾸밈없는 자연에 넋이 나가기도, 펼쳐진 풍광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기도 했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안갯속을 걸었는가 하면, 바람에 날리는 낙엽이 될까 봐 온 힘을 다리에 보내기도 했다. 산이 오름이 될 수 없듯이 오름 역시 산은 아니었다. 산의 칼칼한 맛을 오름에선 맛볼 수 없었다. 초가지붕이나 한복의 소맷자락처럼 부드럽고 포근했다. 모난 곳이 없으니 정 맞을 일 없어 두루뭉술하니 정다웠다. 예서 느끼는 제주 사람의 인심이 오름을 닮았다. 무뚝뚝한 것 같으나 정이 많고, 무심한 듯 지나치나 세심하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견뎌낸 때문인지 강인하고 올곧다.
오름 투어를 추천한 제주 지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동거미오름은 해넘이가 아름답다는데 그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그저 펼쳐진 풍광에 마음이 후련해져 심호흡만 연신 해댔다. 따라비오름을 오를 땐 ‘삼다’ 중 ‘일다’를 제대로 만났다. 영혼까지 집어삼킬 기세로 바람이 나를 채 가려했다. 몸과 마음이 휘청거렸다. 지금까지의 삶도 그러했다. 하지만 극복의 묘미를 즐기는 사람은 반드시 살아남는다. 좋은 이웃이 있어 주저앉을 수 없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세상살이의 숨구멍은 사람과의 교감이다. 어울리고 나누고 소통하며 세월의 때를 벗겨낸다. 제주 사람에게 남긴 내 마음을 담은 글처럼.
배려!
태초에 뭍과 섬이 한 덩이였듯이 그대와 내가 다름이 없다.
생각하는 바와 추구하는 것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배려를 받았지.
기꺼운 마음으로 시간을 할애해 주어 고마웠다.
뉘라고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이건 온전한 내 복이다.
그래서 좋다.
무심한 듯 챙겨주던 그대의 친절.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내 마음과, 그대가 나의 친구라는 게 자랑스럽다.
제주 천사!
새벽에 내렸을 커피 한 잔은
한라산에서 바라보던 구름이었고, 이슬 품은 새벽 들꽃이었다.
기분 좋은 만남에 어깨를 으쓱거린다.
세심한 배려에 여행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참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