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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Oct 18. 2023

파도소리에 마음이 씻기는 것 같아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도 멋지지만 해 질 녘, 밤을 향해 달려가는 제주 바다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주 10경’의 하나인 ‘사봉낙조’를 보았다. 해넘이로 불타는 바다가 놀라웠다. 마치 내 안에서 불덩이가 빠져나와 바다로 들어간 듯했다. 뉘라고 이 정열을 무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으랴. 침을 꿀꺽 삼켰다. 제주의 해넘이와 서귀포의 해돋이가 같은 느낌일까 아닐까. 이 둘은 같은 하늘을 공유하고 있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서귀포로 넘어갔다.  

     

서귀포 동쪽의 바닷가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는 친절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은 해 돋을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었고, 날씨는 쾌청했다. 참 신기하다. 부산 바다나 제주 바다의 해님은 같은 해님이지만 결코 같지 않았다. 모양도 느낌도 떠오르는 모습도 완연히 달랐다. 부산의 것이 남성적이라면 제주는 다소곳한 여성이었다. 부끄러운 듯 조용히 내미는 얼굴을 나 역시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해님은 거울을 보듯 제 얼굴을 바다에 뿌려댔다. 빛이 마음까지 들어오도록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서귀포에서는 꼭 가려는 곳이 있었다.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의 작품 ‘방주교회’를 보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다이내믹하게 흘러가는 하늘 아래 잠시 멈춰 서 있으면, 마치 공기와 빛이 내 주변을 달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설계 전에 이 말을 했다는 이타미 준은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교회를 설계했다고 한다. 평일 이른 아침의 방주교회는 적막했다. 명성에 걸맞게 사방 물에 비친 모습은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날씨도 한몫을 했다. 쨍한 햇살과 푸른 하늘은 지붕이 계속해서 빛을 반짝이도록 부추겼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왜 방주교회를 ‘하늘의 교회’라고 부르는지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제주의 하늘이 방주교회의 지붕 위에서 뛰놀고 있었다.          

교회는 내부도 특별했다. 하늘빛깔의 외관 유리 덕분인지 빛이 가득 차 있었다. 마음에 걱정 주름을 갖고 있는 사람이 교회에서 기도를 하면 그 주름이 모두 펴져 밝은 얼굴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지금껏 보아온 교회는 건물보다 십자가가 먼저 눈에 들어왔는데, 방주교회는 외부에서 십자가를 찾을 수 없다. 교회 정면 위쪽 창문 살의 열십자(十)가 십자가를 상징하는 걸까 싶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나의 추측일 뿐이다. 교회가 왜 비대칭적인 구조로 설계됐는지도 궁금했다. 설계 의도를 알고 싶어 홍보 팸플릿을 읽어도, 안내판을 찾아 두리번거려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교회는 산방산 방향의 바다를 향해 금방이라도 출항할 것 같이 보일 뿐이었다.     

     

제주는 아픔이 있는 섬이다. 송악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산에 있는 일제 동굴진지만으로도 태평양 전쟁 말기를 감내한 지역주민들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아픔을 간직한 산이라고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송악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경치에 압도당한다. 장관이다. 한쪽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는 말 한 마리가 나를 바라본다. 나는 말을 구경했고, 말은 나를 구경했다.       


여행 계획은 탈선하는 재미가 맛나다. 진한 제주 사투리를 들으며 중산간을 동·서 방향으로 돌려던 시외버스 투어를 취소했다. 그 대신 동네를 돌며 여유를 부리기로 했다. 숙소인 ‘티벳풍경’에서 나왔다. 흐느적거리며 걷다 만난 이름 모를 꽃의 생명력이 정신을 맑게 한다. 우연히 오른 ‘군산오름’의 트인 전망도 좋았다. 마음이 개운하다.      

 

우도는 참 재밌다.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길을 중앙고속도로라고 부른다기에 소리 내어 웃었다. 해안 길과 중앙고속도로는 차로 돌았다. 경제 논리를 대입시키기는 낯간지럽지만, 시간 절약과 우도 탐방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한 선택이었다.

비양도에서 해돋이를 볼 생각으로 우도의 게스트하우스 ‘초원’에서 자전거에 올랐다. 녹슨 자전거는 찌걱거리며 아우성을 쳐댔지만, 어르고 달래 가며 비양도로 건너갔다. 해돋이의 명소 비양도는 우도와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해돋이를 기다리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뒤를 돌아보았다. 예전에 4전 5기의 주인공으로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권투선수 홍수환 씨가 해돋이를 보러 왔고, 팬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사인을 받고 있었다.    

         

해돋이를 본 기분 좋음은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서도 유지되었다. 숙소 안주인의 명랑한 아침밥이 돈키호테처럼 내게 무모한 자신감을 부추겼으니 말이다. 우도 일주를 위해 렌터카를 빌리듯이 대여점에서 제대로 된 자전거를 빌렸다. 페달을 힘차게 돌리다가 바닷가 한적한 도로에서 해녀가 파는 자연산 멍게를 먹었다. 그 힘으로 우도봉 정상을 밟는 순간 ‘소섬’은 해녀에게 받아먹은 멍게처럼 내 것이 되었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나는 물을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 바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영은 물론이고 남들이 즐기는 레저 활동도 흥미가 없다. 물에서 유일하게 해 본 것이 제주에서의 Sea Walk이다. 잠수복을 입고 산소통을 멘 상태에서 바닷속을 걸어 다니는 놀이인데, 주위의 부추김과 나의 호기심이 만나 부린 객기였다.

나에게 바다는 그저 바라보는 대상일 뿐이다. 해녀들이 물질한 자연산 해산물을 만나면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고, 바닷가에 앉아 멍을 때리면 세상의 근심을 잊게 된다. 파도의 부서짐이 마치 내 속의 아우성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마음 씻기를 한다. 속이 다 후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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