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식당’
일주일에 딱 하루, 수요일과 목요일 중에서 주인 마음대로 사전 예약을 받는 제멋대로인 식당이 있었다. 금요일과 토요일 중에 역시 쥔장이 요리할 수 있는 날을 미리 지정해 한 번에 딱 두 명에게만 요리를 제공하는 간판 없는 음식점이었다. 예약이 하늘의 별을 따는 수준이라는데 손 빠른 이웃 덕에 의자 하나가 내 몫으로 돌아왔다. 간판조차 없는 조그만 식당 앞에는 오래된 나무 의자 하나가 놓여있을 뿐이었다. 이 의자 등받이에 그린 수저 한 벌이 사유식당의 표식이니 기호학의 멋진 활용이다.
그녀는 ‘새벽달 파스타’와 ‘노을 카레’를 사전에 주문해 놓았다고 했다. 우린 정해진 시간에 정확하게 방문했고 그 시간에 맞춰 음식이 나왔다. 파스타 속에 있는 가지의 고급스러운 맛과 카레의 부드러움에 음식 좀 하는 그녀가 감탄을 했다. 그 순간, 주인의 음식 철학이 궁금해졌다. 우리는 소박하지만 깔끔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내부를 둘러보며 본업은 따로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젊은이가 즐거움을 위해서, 또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일주일에 하루만 영업하는 걸 거라고 속삭였다. 생업을 위한 영업 방식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사유식당은 생각을 부르는 思惟食堂이었고, 4(four) you식당이었으며, four you는 for you 즉 for me의 다른 표현이었다.
‘로쿄’
꽤 알려진, 그러나 아는 사람만 아는 카페 로쿄 역시 사유식당과 같은 색깔을 지닌 커피 집이었다. 외관만 보면 카페일 것 같지 않은데 들어가면 영락없는 카페였다. 이 집은 커피 맛도 일품이지만, 투박한 손을 가진 남자가 직접 만든 당근 케이크의 맛이 예사롭지 않았다. 사유식당에서 그릇을 파내려 가듯 싹싹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커피에 곁들인 케이크까지 게 눈 감추듯 해 치우자 비로소 눈에 들어온 액자 하나. 빛바랜 종이에 히라가나로 적어 놓은 로쿄, 이 집의 간판이었다.
사유식당과 카페 로쿄의 공통점은 간판 없는 맛 집이란 것이다. 눈 밝고 손 빠른 사람만이 찾아가는 고수의 집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전통 음식과 거리가 멀지만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찾아들던 시골 할머니 집처럼 정다움이 묻어나는 집이다. 그래서 반가웠다.
가끔은 이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쉴 곳이 필요하다. 어쩌면 사유식당의 운영자도 쉬기 위해 요리하는 것일 수 있고, 카페 로쿄 주인도 돈에 대한 욕심보다 실험정신이 더 앞섰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살기 위한 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현대사회의 복잡다단한 구조 속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는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공황장애를 요즘은 연예인을 통해 흔하게 듣고 있다. 언론보도(조선일보 2023. 5.16)에 의하면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의 비율이 10년 전보다 2.5배나 늘어났다고 한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스트레스와 관련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란다. 그만큼 세상살이가 녹록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방증이다.
나도 예전에는 워커홀릭처럼 살았다. 내 업무가 밀리거나 누군가에게 책잡히는 것을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달았다. 아등바등 사는 것과 슬렁슬렁 사는 것이 결국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오히려 아등바등 거리는 사람은 일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시간을 쓰고, 슬렁슬렁하는 사람은 일은 일대로 하며 놀기도 잘한다는 것을.
세상이 바뀌었다. 소확행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마른 들판의 들불처럼 번지더니 파이어족도 심심찮게 소개된다. 그만큼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인생을 즐기겠다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임을 전제로 할 때, 각자 사는 방법은 다르겠으나 행복을 향한 마음만은 같을 것이다. 그러니 가끔은 정신을 쉬게 할 일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놀이를 찾아 일탈을 해 보자. 달리는 인생에 가끔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건강한 삶이 보장된다.
* 이 글을 쓰며 확인해 보니 코로나19 때문이었는지 ‘사유식당’과 ‘로쿄’가 모두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