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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Oct 18. 2023

잘 노는 그대를 신 중년이라 부르리

‘행복했습니다!  

4박 5일,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무사히 댁까지 잘 들어가시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인연이란!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스쳐, 그 바위가 눈가루처럼 하얗게 될 즈음

그때서야 한 번 찾아오는 것이라고... ’     


울릉도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젊은 참가자가 쓴 글을 읽었다. 이 친구가 이런 감성의 사람이었구나. 어쩐지 눈에 띄더라니.



울릉도를 갔었다. 사단법인 이사부기념사업회의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병영캠프’에 참가한 것이었다. 두 번이나 거부당한 울릉도에 대한 아쉬움을 라푼젤 언니에게 토로한 후였다.

“언니, 난 울릉도 하곤 연이 닿지를 않네. 두 번이나 날씨 때문에 배가 출항하지를 못하더라구.”

언니가 포스터 하나를 보냈다. 동해왕 이사부 항로탐사 병영캠프 참가자 모집 안내였다. 주저 없이 신청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냈다. 전국 공모인 탓에 나이가 많아 떨어질 수 있다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운이 닿았다.      


같은 목적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릴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그것도 장소가 울릉도 아닌가. 4박 5일간의 특별한 체험을 기대하며 삼척에서 출정식을 마치고 울릉도로 들어갔다. 나를 위한 일정 같아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갑자기 날씨가 돌변했다. 내륙은 비가 많이 내린다 했고, 울릉도는 우리가 들어온 이후 배가 끊겼다고 했다.

인간은 자연을 거스를 수 없다. 독도에 입도해서 독도주권선포식을 한 후 위령비를 참배하려던 일정이 변경되었다. 바람이 심해 독도로 출항하는 것이 불가능하단다. 울릉도에 있는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에서 독도주권선포식을 했다. 비록 독도를 밟지는 못 했으나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젊은이가 된 것처럼 몸에 힘이 들어갔다.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민간인이 운영한다는 예림원을 거닐다가 ‘나를 바라보는 그대가 바로 부처다’ 동판을 발견했다.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부처다’와 결이 닿아 있었다. 나는 그를 부처라 여기는데, 그는 나를 부처라 하니 바로 이곳이 극락정토가 아닌가. 가슴이 뜨거워졌다.      


“승객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파고가 높아 계속 운항이 위험하오니 다시 울릉도로 회항하겠습니다. 승객들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시고 앉아 계시기 바랍니다.”      


세상살이는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병영캠프 일정을 마치고 나오는 날, 삼척을 향해 출항한 배 안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30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날씨예보를 다시 확인해 파고가 3m 이하면 출항, 이상이면 출항 포기라 했다. 배 안에 머물며 얼마를 바다 위에 떠 있었던가. 선장이 항로 상 날씨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파고가 덜한 방향으로 운항을 재개해 먼 길로 돌고 돌아 삼척항에 도착했다. 삼척은 쾌청한 날씨에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의 인연은 하늘의 일인가 보다. 내가 속했던 2팀 8조의 조장은 부산 사람이었다. 그런데 산티아고에서 다리 아픈 나를 피붙이처럼 도와주던 서울 사람인 라푼젤 언니와 아는 사이였다. 같은 사람을 서로 알고 있다는 게 확인된 후의 놀라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춘천 사람이 알고 있는 서울 사람하고 친하다는 부산 여자를 울릉도에서 만나다니.       


시대가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중늙은이란 말을 듣고 있을 환갑이 지난 나이이다. 그런데 나는 집안에 들어앉아 꼰대노릇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를 실감하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10kg의 배낭을 메고 울릉도를 누비며 확인했다. 나는 중늙은이가 될 만큼의 여유 시간이 없다. 아직은 신 중년에 걸맞게 ‘화백’으로 살고 싶다. 시대가 변했음을 자각하며 당연히 내 남편도 ‘마포불백’이 아닌 ‘낭백’으로 살도록 자극을 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살이가 더 맛있어진다.         

  

* 화백; 화려한 백수

* 마포불백;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

* 낭백; 낭만 백수  (출처; 인터넷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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