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 겨우 두 알? 그래도 여보, 고맙수~.”
남편은 자기 놀이터에서 집으로 들어올 때마다 푸성귀 조금과 유정란 몇 알씩을 들고 온다. 그럼 난 남편의 수고가 아까워 자투리 하나 못 버리고 밥상에 올린다. 그래서 아들아이는 조촐한 우리 집 밥상에 불만이 많다.
어느 날이었다. "여보, 오늘은 수탉이 알을 낳았어." 남편이 메추리알만 한 계란을 주며 평소와 다른 말투로 아는 척을 했다. 난 허무맹랑한 얘기가 어이없어 코웃음을 쳤는데, 세상에나! 정말 수탉도 알을 낳는단다. 호르몬에 의해 암컷과 수컷이 구분되는데 어쩌다 수정관을 갖고 태어나는 수탉이 있단다. 세상은 요지경이다. 양성을 갖고 태어난 수탉이 메추리알 크기의 노른자 없는 미성숙 알을 낳는 거란다. 호르몬 이상 때문이라니 세상에는 별일이 다 있다.
황선미 선생의 책 『마당을 나온 암탉』이 떠올랐다. 이 책은 꿈을 위해 자유를 갈망하던 양계장 속 암탉 ‘잎싹’이 주인공인 성장 동화이다. 더 이상 알을 낳을 수 없게 된 ‘잎싹’은 폐계가 되어 닭장 밖으로 버려진다. 그러나 목 깃털이 다 빠지고 볼품없이 말랐지만 직접 알을 품어 병아리를 키워보고 싶다는 소망까지 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마당을 나와 숲으로 들어갔을 때 풀숲에서 발견한 알을 자기 자식인 양 품는다. 태어난 것은 오리였다. 청둥오리 ‘초록머리’의 탄생 비화이다. 엄마 ‘잎싹’이 다르게 생긴 자신의 아기 ‘초록머리’를 통해 보여주는 모성애는 놀랍도록 눈물겹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암탉 ‘잎싹’은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주위의 시선과 싸우면서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우뚝 서는 의지를 보인다. ‘잎싹’ 스스로 족제비에게 목숨을 내어주며 얻는 영혼의 자유는 읽는 이의 마음에 커다란 울림으로 남는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도 한다.
박노해 선생의 사진 에세이집 『다른 길』은 같은 제목의 사진 전시회에서 알게 된 책이다. 선생이 찍었던 사진에 짧은 글이 덧붙어 있는 공간에서 나는 사진과 글의 매력에 빠졌다. 당연히 내 발길은 달빛에 비친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져서 짧아질 줄을 몰랐다. 나 역시 다른 길에 대해 생각이 많았던 까닭이다. 책 속에는 저자가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총 여섯 나라를 여행하며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을 기록해 넣었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전통 마을 토박이들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길 위에 서서 저자가 겪은 삶, 그리고 지혜의 말이 글과 사진으로 보인다. 시인의 글답게 감성적인 이야기가 흑백사진과 함께 들어있다.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새길만한 얘기이다. 그런가 하면 책 속 사진에서 가파른 비탈밭을 일구며 인도네시아 여인이 했던 말도 곱씹어 볼 만하다.
‘밭을 밟고 오르며 농사짓는 건 몸이 좀 힘들 뿐이지만 남을 밟고 오르는 괴로움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지요. 늘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삶에는 정해진 답이 있을 수 없다. 스스로 자신만의 정답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한 때 마음이 무거워 주저앉고 싶었다. 다행히 책이 늘 가까이 있었기에 그때마다 책을 집어 들었다.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고, 길 위에 서서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별칭을 만들었다.
‘하람’
‘하늘이 내린 사람’을 줄여 만든 이 닉네임은 '이 또한 잘 지나가도록 시간이 해결할 거야'를 마법의 주문처럼 되뇌게 했다. 일종의 자기 암시이며, 고난과 시련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나에게 거는 최면이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를 알고 자중하라는 소리 아닌가. 나는 이것을 극복하고 싶었다. 시부모님이 계시고 아이도 세 명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무언가를 공부했다. 내 특기가 시간을 고무줄처럼 늘여 쓰는 것이다. 퇴근 후 서울의 대학을 오르내렸고, 평생교육사도 논술지도사도 되었다. 방화관리자 1급 자격증도, 한자 자격증 2급도 갖고 있다. 지금은 중국말을 배우느라 젊은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뛰는 중이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내 삶의 색깔을 만들었다고 여긴다. 그렇기에 나는 세상을 허투루 살 수가 없다. 차분하게 오늘을 살며, 어제의 오늘을 기억하고, 내일의 오늘을 맞을 것이다. 이것이 하람답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신 중년을 지나 노년이 다가왔을 때 지나온 시간을 되새기며 미소 짓고 싶은 까닭이기도 하다.
세월은 노력을 외면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흡족하다. 언제 무슨 일을 해도 믿어주는 남편은 가장 든든한 내 편이 되었다. 친구처럼 놀아주는 딸도 두 명이나 있고, 디지털 세상을 적응하지 못해 쩔쩔맬 때면 슈퍼맨처럼 나타나 해결해 주는 아들도 있다. 어찌 여기에 더해 무언가를 또 바라겠는가. 그러니 이젠 내 삶을 마음껏 즐길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