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에는 버킷리스트가 산다

by 하람

나는 걷기를 좋아하니 당연히 산길 걷는 것도 즐긴다. 가끔 춘천의 대룡산을 오르다 보면 엄청난 부피의 장비를 짊어진 채 활공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본다. 대룡산 인접 산책로를 걷다 보면 하늘에 떠다니는 패러글라이더를 볼 때도 있다. ‘저걸 타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나도 저거 한 번 타보고 싶다’. 부러워하고 동경했다. 그러나 내가 패러글라이딩을 한다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것을 어찌 배워 하늘을 날겠는가. 신기한 듯이 바라보기만 했다.

제주도에서 패러글라이딩이 취미인 지인의 주선으로 하늘을 날았다. 고수의 도움으로 땅에서 발이 분리되는 순간, 두려움과 호기심이 만들어낸 긴장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한 편의 동화이자 영화였고 신세계였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랐던 그때의 풍경과 차원이 달랐다. 만족이 극에 달해 전율이 일었다. 너무 좋았다.

꿈꾸던 산속 비박 역시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고수를 따라나섰다. 여자 둘이 산꼭대기에서 누리는 밤의 자유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엄두내기 쉬운 일은 아니다.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와인은 취하기는커녕 정신을 더욱 맑아지게 했다. 흔들리던 눈빛을 반짝이게 했고, 순간을 즐기라고 부추겼다. 해넘이에 얹어 보낸 상처 있던 마음은 새 날 새 아침에 빛나도록 투명해져서 돌아왔다. 해 질 녘의 일몰이 돌아앉기 바쁘게 일출로 보여지는 마법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자연에 동화된 나는 춤추고 있던 가을과 어울려 장단을 맞추었다. 밤의 여신이 보낸 싸늘한 바람이 온몸의 세포를 긴장시켰다. 주섬주섬 배낭을 꾸려 산을 내려오기 바쁘게 제대로 만든 겨울용 침낭을 구입했다. 조금 더 노는 범위를 넓히려는 나의 계산이 들어있었다. 그날 이후 더 멋지게 놀이 문화가 업그레이드되었다.

독일사람 ‘웰렌 도르프’가 자신의 집 마당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본 고종 임금은 “귀빈은 그렇게 힘든 일을 아랫것들을 시키지 왜 직접 하느라고 고생하시오.”라고 했단다. 이 사례처럼 만약 내가 패러글라이딩으로 날아보지 못했고, 비박으로 한뎃잠을 자보지 않았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세상을 직접 체험했다. 누군가가 패러글라이딩에 대해 얘기하면 “나도 그거 타 봤어.”라며 끼어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때의 벅차오르던 마음은 행복이었고, 어린아이의 호기심 같은 흥분이었다.

비박 역시 별천지였다. 잠결에 들린 빗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그 소리는 나뭇결과 사랑을 나누는 바람 소리였다. 순간 나도 비박과 사랑에 빠졌다. 머리가 맑아졌고 신비로움에 휩싸였다. 버킷리스트 실행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품고 있던 것을 실행에 옮겼다. 베트남의 ‘메콩강 수상시장을 가서 쌀국수 사 먹기’와 같이 엄두내기 쉽지 않은 것들을 실행해 나갔다. 성취감과 쾌감! 나는 이 맛에 취해 지금도 버킷리스트의 다음 타깃을 찾아 레이더망을 가동한다.


“너 요새 시간 있니? 인간극장을 보는데 비수구미마을이 나오더라. 정말 오지래. 난 그 마을에 가서 산채비빔밥을 먹어보고 싶어.” 서울 사는 친구가 ‘정말 가보고 싶어’를 강조하며 전화를 했다. 어찌어찌 시간을 맞춘 세 소꿉동무 부부가 화천의 오지 비수구미마을까지 트레킹을 다녀왔다. 햇살을 받으며 청정의 땅을 걷는 즐거움은 매우 컸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이들과 있으니 신이 났고 생동감이 느껴졌다. 찰나를 건드리는 매 순간마다 즐거움이 묻어났다. ‘소꿉동무들과 부부동반 여행하기’는 나의 버킷리스트에 너무 오랜 시간 들어있었다. 사는 곳이 다르고 먹고살기 바빴기에 엄두 내지 못한 채 주춤거리던 일이었다. 더구나 남편까지 동행이라니. 우연찮게 때를 만나 쉽지 않은 일을 잘 풀어놓았다.


세월이 우리를 변화시켰다. 돈과 시간이 있어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 상실감을 감당하지 못함을 알게 했다. 몸에 문제가 생긴 후에 비로소 ‘아이코! 내 팔자야~’를 외친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죽을 때가 되어서 ‘...... 걸’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해볼 걸, 먹어볼 걸, 가볼 걸처럼 ‘...... 걸’을 생각할 때는 이미 시기가 늦어버린 후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후회할 일을 가급적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면 자기 멋대로 사는 게 최선이다. 일도 놀이처럼 풀어내며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갈 배짱을 키워야 한다.

나는 내 몸에서 힘이 더 빠져나가기 전에 마음속에 살고 있는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꺼내 세상에 풀어놓는 중이다. 삶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는 바람의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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