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착오라 쓰고 또 다른 기회라 읽는다

by 하람

인간의 삶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줄 모른다더니 나도 다르지 않다. 평생을 한 직장에서 근무하다 2020년에 정년퇴직을 앞두고 운 좋게 재취업이 되었다. 연간 휴가기간도 꽤 여유롭게 쓸 수 있는 회사였다. 함께 퇴직하는 동료들이 부러워하며 취업 방법을 묻기도 했다. 공로연수 기간 중이었기에 겸직 허가를 받고 근무를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업무를 하는 긴장감과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익숙해진 후에는 출근이 신났다. 아직 쓸 만한 사람임을 확인받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친해진 동료도 생겼다. 그러나 업무가 익숙해지자 뜨문뜨문 회의감이 들었다. ‘평생 사회생활을 했는데 건강할 때 내 맘대로도 살아봐야 하는 거 아닐까.’ ‘일만 하다가 늙고 병들면 서럽겠지’ 주로 이런 생각이었다. 친하게 지내는 선배는 내 재능이 아깝다며 혀를 찼다. ‘내 재능이 뭐라고’ 하면서도 귀가 솔깃했다. 여러 날 휴가를 쓰겠다는 얘기에 난감한 표정을 짓던 새로운 직장의 팀장이 결정에 부채질을 했다. 마침 희망퇴직 얘기가 나왔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희망퇴직을 신청했고, 2023년 1월에 내 자리로 돌아왔다. 2년여의 새로운 경험은 못 겪어봤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했다. 내 자리로 돌아온 지금은 잘 돌아왔다고 자평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으로 정신이 더 튼실해졌음을 스스로 느낀다.

기회가 찾아오면 얼른 손을 내미는 나의 결단은 친정어머니의 교육관 덕분이다. 우리 엄마는 나 어릴 때부터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얘야~, 사람은 도둑질 빼곤 다 배워야 한단다."

그 영향인지 처음 시도하는 것에 대한 저어함이 없다. 이 자세는 다른 배움에서도 나타난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학습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한때 나이가 들면서 이런 나의 도전을 주저하던 시절이 있긴 했다. ‘젊은이들이 나를 불편해하면 어떡하지’ ‘평균 연령을 높여놨다고 자기들끼리 뒷얘기를 하는 건 아닐까’ ‘진도를 못 따라가 민폐가 되면 어쩌지’ 등등 오지랖 넓게 걱정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강좌를 등록하고 첫 시간이었다. 거의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자기소개를 하는데 덜덜 떨렸다. 긴장을 해서 어떻게 말했는지 기억나지도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져서 자리에 앉는 순간, 한 생각이 떠올랐다.

‘내 돈 내고 자발적으로 왔으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누군 뭐 엄마 뱃속에서부터 배우고 나왔나. 내가 몰라서 배우겠다는데 어쩔 건데. 아마 너네도 다 처음엔 떨었을 걸~.’


이제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일상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뻔뻔스러움도 함께 늘어나 새로운 장소에 가도 긴장은 하지만 주눅 들지 않는다. 처음 만난 교육생들과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면 꼭 하는 말이 있다.

“나이가 많아 제대로 못 따라가면 미워하지 말고 좀 도와주세요.”

웃으면서 하는 부탁 아닌 부탁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미운오리새끼처럼 열심히 물을 가른다. 뒤쳐지지 않고 젊은이들을 쫓아가려 함이다.


지금은 일주일에 두 번 저녁시간에 중국어를 배운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나이지만 그래도 시도한다. 남편에게는 치매 예방용으로 머리 쓰러 나가는 거라 말하지만 사실은 여행을 좋아하니 말을 배우러 가는 것이다. 30대 초반의 직장인들과 나이를 건너뛴 60대의 내가 한 반에서 배운다. 심신의 노화는 어쩔 수 없으나 학습할 때의 열정은 젊은이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다. 자존감으로 하늘을 찌르며 들어간 강의실에서 나는 마음속으로 말한다.

‘수강생들이 나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냐? 나이 들어도 공부하겠다는 내 의지가 젊은이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잖아.’


사람은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는다. 좌충우돌 본능적으로 이리저리 시도하길 반복한다.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한 방법을 모르니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의 시도는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면서 용기를 배운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용기는 결론에 다다르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다.

피아니스트 '바부제'는 말했다.

"삶은 일직선이 아니기에 좌절하고 실패할 시간도 필요하다. 한쪽에서 보면 삶은 혼돈으로 가득한 것 같지만, 시간을 두고 다른 쪽으로 돌아가서 보면 명백해질 때가 있다. 그 시행착오나 방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렇다. 우리는 목표로 삼았던 것을 이루기 위해 실수나 실패를 할 수 있다. 이때 그대로 주저앉아 팔자타령을 한다면 인생이 아깝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며 매우 중요하다. 후회하는 일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함은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꿋꿋이 서 있기 위해서라도 기회가 찾아오면 반드시 붙잡을 일이다. 그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나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나이를 의식해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삶에서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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