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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Feb 07. 2024

기적의 메달을 선물 받다

- 걷기 16일 차 -

어떤 방법으로든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발목은 여전히 부어 있고 아프지만 맥이 풀려 있으면 나만 손해이니 말이다. 출발에 앞서 알베르게 마당에서 기분전환용 셀카를 찍었다. 때를 같이해 엄청난 바람이 다가와 질투를 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이다. 황량한 메세타 고원 길을 가다가 경유 마을인 ‘비얄카사르 데 시르가’에서 Bar에 들렀다. 주로 바에서는 휴식을 빌미로 커피를 마시지만 오늘은 브런치를 먹기 위함이다. 순대(?), 빵, 엔초비와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우리나라의 순대와 비슷하게 생긴 이 음식은 전주의 피순대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이게 더 감칠맛이 난다. 바게트빵 위에 절여진 엔초비를 올려 먹는 맛은 또 어떠한가. 다른 빵과의 맛 비교를 거부할 만큼 별미이다. 거친 빵에 짭조름한 엔초비가 더해져 균형 잡힌 맛을 내는데 여러 개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요 며칠을 차로 이동하니 중간 마을 Bar에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순례자나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시간이다.   

   

이 마을 중앙에는 13세기에 템플기사단이 세웠다는 ‘산타 마리아 라 블랑카(Santa Maria la Blanca) 성당’이 있다. 큰 규모에 투박하고 담백해 보이지만 장미창은 건물의 분위기와 달리 현란하게 아름답다. 어디를 가나 성당의 조각 장식은 눈부시게 아름다운데 이 성당의 장미창은 특히 더 그렇게 보인다. 

팔렌시아(Palencia) 주의 보물인 성당 안에는 템플기사단의 무덤과 알폰소 10세의 동생 ‘돈 펠리페’와 그의 아내 ‘도냐 레오노르’의 무덤이 있다. 

기억하고 싶어 이쪽저쪽으로 다니며 사진을 찍지만 피사체가 모두 사진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할 수 없다. 이럴 땐 눈에 담아 가는 게 최고이다      

  

오늘 머무는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는 꽤 큰 도시라서 약국이 있다고 들었다. 일찌감치 마을로 들어와 약국을 찾아가다 등교하는 아이와 엄마를 만났다. 입학 시기가 아님에도 아이와 동행하는 엄마의 모습을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니 낯설다. 이곳에서는 학년에 관계없이 초등학생 자녀는 부모가 등하교시키는 것이 의무사항이란다. 나의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시절이 소환되었다. 학교에 막 입학한 신입생일 때 우리 엄마도 내 손을 잡고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때 난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접어 옷핀으로 매단 채 엄마 손을 잡고 달랑거리며 걷곤 했다.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잡고 있던 엄마 손의 온기는 사랑이었고, 사랑 표현에 서툴던 엄마의 진한 마음이었다. 그러니 저 조그만 아이는 지금 얼마나 행복할까.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7유로짜리 알베르게에 들었다. 창문 장식이 스테인드글라스는 아닌 것 같은데 특이하고 아름답다. 배낭을 배정된 침상에 놓기 바쁘게 다시 사무실로 ‘쎄요’를 받으러 갔다. 그런데 쎄요를 찍어주는 수녀님 책상 위에 ‘기적의 메달’이 담긴 바구니가 있는 게 아닌가.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 앞에 서 있던 순례자가 자랑스럽게 자신의 팔을 쭉 내밀었다. 파리에 있는 ‘기적의 메달 성모 성당’을 방문했을 때 기적의 메달 팔찌를 구입했단다.  크고 중요한 수술을 받은 지인에게 그 메달을 선물하면 엄청 기뻐할 것만 같았다. 수녀님께 간절한 눈빛으로 계속 사인을 보냈다. 

“Do yoy want?” 

“Yes” 

야호~! 엄청 좋아할 천주교 신자인 이웃의 웃는 얼굴이 눈에 선하다.      


이 알베르게는 단층 침대에 주방시설이 되어 있는 것이 장점이다. 순례자들은 대부분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직접 식사를 준비해 먹는다. 그러나 나는 몸이 편치 않으니 사 먹는 게 편하다. 와인이 곁들여진 순례자 메뉴는 맛과 가격 면에서 가성비가 좋은 메뉴이다. 별미가 있는 지역에서는 별미 식사를 하는 즐거움도 빼놓지 않는다. 거의 한식만 먹던 내 입맛에 음식이 맞지 않을까 봐 걱정했으나 기우였다. 이곳의 식문화에 길들여져서 은근히 식사시간을 즐긴다.    

더구나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마시는 커피와 맥주와 와인은 분위기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그것과 맛이 다르다. 집에 돌아갔을 때 이 길을 생각하며 마시는 것들이 맹물같이 느껴지면 어떡하지?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숙소에서 내 발목 상태를 알게 된 또 다른 순례자의 새로운 약이 등장했다. 나중에 발목이 좋아지면 현지인과 순례자들의 아주 많은 비법과 약을 사용했기에 어느 것 때문에 좋아졌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점점 불편한 생활에 익숙해진다. 습관처럼 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하고, 자연스레 귀마개를 하고 잠이 든다. 하지만 다리 통증으로 뒤척이느라 숙면은 힘들다. 


* 걷기 16일 차 (프로미스타~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Carrion de los Condes)) 19.5km / 누적거리 379.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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