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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Feb 06. 2024

어! 발목이 왜 맵지?

- 걷기 15일 차 -

밤새 발목이 아파 잠을 설치고 일어났더니 아침 기분이 꿀꿀하고 몸은 찌뿌둥하다. 이런 기분은 걷는 게 약인데 차로 이동하려니 심정이 복잡하고 안타깝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다리가 마음 같지 않은 걸. 애써 정신을 추스르고 다시 차로 이동한다.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11월로 접어들며 기온이 떨어졌건만 비박을 하며 개 4마리와 함께 걷는 외국인 부부를 만났다. 개들까지 배낭에 가리비를 달고 메고 있다. 폼이 났다. 그러나 나는 짠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바람을 가르며 걷고 있는 저 개들은 행복할까.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걸어야 하는데 힘들지는 않을까.       



‘프로미스타’까지 가며 거치는 중간 마을 ‘보아디야 델 카미노(Boadilla del Camino)에 도착했다. 제니퍼는 이 마을에 있는 ‘성모승천성당’이 14세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아기가 태어나면 13세기에 만들어진 세례대에서 세례를 받고 있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런데 김희곤 선생이 쓴 책 『스페인은 순례길이다』 속에는 16세기에 짓고 18세기에 재건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럴 때는 좀 혼란스럽다. 다분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13세기에 만든 세례대가 14세기의 성당에 있는 것이 시기적으로 더 적절할 것 같긴 하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오류라면 김희곤 선생께 큰 결례를 한 것이다.    


무심하게 성당 지붕 꼭대기로 눈길을 돌리니 꽤 큰 새 둥지가 보인다. 맑은 햇살을 받아 안락해 보이는 새의 집, 저 안식처에 살고 있는 새들은 하느님의 가호로 무탈할 것만 같다. 그러나 아쉽게도 마을을 떠날 때까지 새들이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아 어떤 새가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성당 앞에는 15세기에 세워졌다는 7m 높이의 ‘심판의 기둥’이 있다. 이 기둥은 5개의 기단과 장식을 두른 기둥, 그리고 그 위에 탑이 있는 형태이다. 기단은 인간 세상을, 기둥은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다리를, 원형의 장식 탑은 천국을 상징한다고 한다.  마을의 상징인 동시에 까미노 프랑스 길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것이란 설명에 다시 바라본다.  

    

이렇게 유서 깊은 성당이 있는 마을도 세월이 흐르면서 쇠락했다. 한때는 매우 큰 마을이었다는데 현재는 인구가 200명밖에 되지 않는단다. 고요한 마을을 어슬렁거리다가 그림 같이 아름다운 알베르게를 발견했다. 잘 가꾼 정원 곳곳에 조형물들과 벤치가 놓여 있어 마치 미술관에라도 들어온 듯하다. 누군가가 보이면 인사라도 나누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지나가는 순례자에 대한 배려인지 어떠한 인기척도 없다. 고요한 정원에 앉아 한참을 사색에 잠겼다가 일어난다. 이름 모를 알베르게의 앞뜰에서 정화시킨 마음은 다시 움직이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오늘의 목적지인 ‘프로미스타’ 도착 직전에 18세기에 만들었다는 수로를 보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약간의 오르막을 절뚝이며 올라가니 콘크리트 다리와 수문을 조절하는 장치가 보인다. ‘가스띠야 수로’이다. 그동안 이 수로는 카리온(Carrion)강과 피수에르가(Pisuerga)강의 물을 티에라 데 캄포스(Tierra de Campos)에 나누어 주는 역할을 했단다. 게다가 18세기 이후까지도 옥수수 방앗간을 돌리는 데 사용했고, 경작물 운송 역할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물이 많이 줄어든 상태라는데, 내 눈에는 세월이 무색하게 여전히 젊고 힘차게 보인다.          


발목은 어제보다 조금 더 아픈 범위가 넓어졌다. 매운 것 같기도 하다. 좋아지려는 명현현상이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걱정스러운 마음까지 감춰지지는 않는다.

알베르게에 도착하기 바쁘게 현지 약국에서 산 젤 형태의 근육이완제로 마사지부터 했다. 병원에 근무하는 큰 아이는 7일 이상 통증이 지속될 거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오늘 머무는 마을 ‘프로미스타’는 양고기 요리가 별미라고 한다. 정보를 입수한 여수 형님이 라푼젤 언니와 나를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맥주가 곁들여진 양고기 요리를 내 좋은 사람들과 먹으니 맛보다 분위기에 먼저 취한다. 지금의 이 좋은 기분이 그대로 유지돼 숙소로 돌아가면 바로 잠들고 싶다. 알베르게의 열악한 환경과 까칠한 주인을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잠자는 것이다.

컨디션이 나쁘니 알베르게의 환경에 따라 기분이 좌지우지된다. 남녀 공용 샤워실과 화장실만 해도 신경이 쓰이는데, 내 침대로 가려면 남성용 침상을 쭉 거쳐야 한다. 물 마시기를 줄여야겠다. 밤새 화장실 드나들기가 불편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떡하나! 이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맥주가 맛나다. 매번 느끼지만 순례길 위에서 마시는 맥주는 왜 이리도 입에 붙는지 모르겠다. 몸속에 잠재돼 있는 술꾼 기질을 물 만난 물고기처럼 여과 없이 드러내며 즐긴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이 순간도 처음 만나는 내 시간인데 하나가 충족되면 다른 하나가 부족해 아쉬움이 생긴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나를 통해 이 길을 느끼는 국내의 이웃을 생각해서라도 좋은 마음으로 즐기자고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 걷기 15일 차(가스트로헤리스~ 프로미스타(Fromista)) 25.5km / 누적거리 36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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