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때문이야> 읽고
내가 나를 사랑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멋진씨는 거울 앞에 서서 “오늘 뭘 입을까”를 고민한다. 이것저것 옷을 대보고, 모자를 쓰고 벗어본다. 벽에 걸린 모자들뿐 아니라 바닥에까지 모자가 널부러져 있다. 이 장면은 멋진씨가 단순히 꾸미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도록 자기 모습을 기준에 맞춰 관리하며 살아온 인물임을 보여준다. 멋진씨에게 ‘멋지게 사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글자글한 주름이 그 기준에 균열을 낸다. 그 순간부터 멋진씨는 사람들을 피한다. 자신이 주름을 먼저 보았기에,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볼 거라 믿는다. 그가 향한 곳은 피부과도, 성형외과도 아닌 도서관이다. 누군가에게 묻기보다, 혼자 해결하려는 방식이 더 익숙했던 사람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야간 털 매장에 들러 수염을 고르는 장면 역시 같은 맥락이다. 멋진씨는 자신을 숨기기보다, 여전히 ‘멋진 상태’를 유지하려 애쓴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끝까지 혼자 정리하려 한다.
전환점은 이웃 잘타씨의 한마디다.
“멋진씨, 그 모자 말이에요. 주름이 멋진 모자네요.”
주름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주름이 아니라 모자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고서야 멋진씨는 다시 거울을 본다. 이전처럼 주름 하나에만 시선이 머물지 않는다. 주름을 포함한 자신의 얼굴 전체가 비쳐진다. 그 순간, 거울에 적힌 “THEY LOOK GOOD ON YOU”라는 문장이 마치 그의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처럼 또렷해진다.
그래서 멋진씨는 모자를 벗는다. 그리고 그 모자를, 멋있다고 말해준 이웃에게 건넨다. 푸른 하늘을 이불 삼아 풀밭에 드러눕는다. 주름은 여전하지만, 더 이상 자신을 무너뜨리는 기준은 아니다.
물론 이것이 작가의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멋진씨가 오래도록 ‘멋지게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관리해온 인물로 보였다. 아마도 내가 멋진씨이기 때문에 그렇게 읽혔을 것이다. 돌아보면 나는 열심을 모토로 매진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 열심은 누군가의 인정을 갈구한 것이었고, 열심히 할수록 정작 나는 내 삶에서 빠져 있었다.
이 그림책은 나에게 말한다.
내가 나를 먼저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할 때 비로소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고. 그 순간, 자글자글한 주름도 결점이 아니라 나의 시간으로, 나만의 멋으로 보이기 시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