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대답이 흔들어준 나의 틀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랍비가 제자에게 묻는다.
“사람이 입은 하나이고 귀는 두 개인 이유가 무엇이냐?”
제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답한다.
“입은 말을 하고, 귀는 남의 말을 듣기 위해 있습니다.
귀가 두 개인 건 말을 많이 하기보다 남의 말을 더 잘 들으라는 뜻입니다.”
랍비는 조용히 웃었다.
이 이야기가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평소 참새처럼 재잘대는 둘째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다.
마침 함께 그림책을 읽기로 한 날, 나는 질문만 먼저 꺼냈다.
“사람이 귀가 두 개인 이유가 뭘까?”
아이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고 있는 거지.”
뜻밖의 대답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기특함과 당황스러움이 동시에 스쳤다.
내가 전하려던 방향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번 더 물었다.
“좋은 생각인데, 그럼 입이 하나인 이유는 뭘까?”
머릿속엔 ‘내가 알려주고 싶은 답’을 꼭 전해야 한다는 마음이 먼저였다.
아이는 또 한참을 고민하더니 말했다.
“입이 하나인데도 시끄러운데, 두 개면 얼마나 시끄럽겠어?”
본인이 시끄러운 줄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나는 아이의 대답을 기계적으로 칭찬하고
준비해 둔 이야기를 덧붙인 뒤에야 그림책을 펼쳤다.
그러고 보니, 정작 두 귀를 열어야 했던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나는 내가 전하고 싶은 말에만 몰두한 나머지,
아이가 건네는 생각을 온전히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이는 이미 자기 방식대로 충분히 생각하고 있었고,
그 생각이 내 것과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더 여유 있게 아이가 만들어가는 생각의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조급함에 내 말만 앞세운 순간이 부끄러웠다.
아이는 내가 해주었던 말을 마음에 담았을까,
아니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을까,
부끄러움이 스쳤지만, 동시에 기특하기도 했다.
아이는 자기만의 생각을 갖고 있었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모양으로, 제 방식대로 자라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결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내 틀 안에 아이를 가두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련다.
아이가 스스로 펼치는 생각 위에 든든한 받침대가 되어주자.
그렇게 다시 한번 다짐하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