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맥주가 맛있다. 뜨거운 열기가 아스팔트 위로 새어 나오듯 뿜어져 나오면 그때부터 한여름은 시작된다.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로 조금만 걸어도 뜨거운 입김이 나온다. 이럴 때는 당장 바다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현실은 휴가 비슷하게 여기는 교육을 듣는 교육생일 뿐이다. 실은 온 힘을 다해 강의를 듣고 있다 해도 여름바다는 모든 걸 다 이긴다.
하와이 바다를 즐기는 야노시호와 사랑이처럼 나이가 들어도 바다를 즐기고 싶어 진다. 문득 야노시호의 수영복이 젊어 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여성적이진 않는...
3년 전이었나? 동생들 조카들이랑 바다를 찾고 함께 서핑을 시도했다. 새로운 재미를 찾아 신나게 어떤 두려움도 없이, 셋째 여동생은 우리 자매를 이끌고 제주신양해수욕장을 찾았다. 신나게라는 말은 유아교육과를 다닌 셋째가 대학 때 많이 쓰던 말이었다. 그때 배웠지만 서핑보드 위에 폼 잡으며 바르게 일어서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먼저 살을 빼고 수영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서핑은 두렵지 않았다. 서핑 가기 전 그림책을 하나 사서 읽었다. 서핑을 함께 하고 '빛이 사라지기 전에'란 그림책을 하나 더 구입한 후 일본 조카에게 보냈다. 그림스타일은 다르지만 그림을 좋아하고 서핑모습이 한 장, 한 장 그려 넣어 있어 제주의 추억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소포로 사서 부쳤다.'빛이 사라지기 전에'는 한 소년이 서핑을 배우고 즐기는 그림의 기록이다. 그림을 읽어 내리다 보면 때론 글보다 그림이 더 표현을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둘둘 말린 서핑보드 안전핀을 끄르고 보드를 옆으로 세우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은 설렘마저 준다. 은빛으로 부서지는 햇빛 속으로 들어간다. 발에 안전핀을 감고 보드 위에 올라타 바닷물을 양손으로 가르는 소년의 모습은 자유록 고 편안해 보인다. 무릎을 굽히고 일어선다. 파도를 탄다. 곡예라도 하듯 재주를 피우지만 이내 곧 파도 속으로 던져진다. 그리곤 다시 낮은 바닷가. 은빛으로 부서지는 태양빛은 바다를 먹고 소년을 먹는다.
엉거주춤 일어선 소년의 오습은 다시 바다를 향한다. 파도에 밀려 바닷속으로 이내 빠진다. 이번엔 느리게 배영을 하며 바다에 누워버린다. 원래 이러기 위해서 서핑이라도 하듯이, 제법 자유롭게, 이번엔 오래도록 드러누워 손을 젓는다, 햇빛냄새를 맡으며 책은 끝난다
책은 조카방 어디쯤에 있을까. 조카는 일본에 다시 돌아간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우릴 이어주는 끈이 책장이 되어 책꽂이 어느 틈엔가 있겠지. 그해 여름 넷째 여동생네는 일본에서 제주를 방문했고 우리와 함께 서핑을 즐겼다
아직 한여름이다. 한여름의 끝이 오지 않을 듯이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생각난다. 초등교실 종이매미 접기는 시작되었을까. 매미 떼들의 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메우던 여고시절로 돌아가더라도 한여름의 끝은 오고야 만다. 그러나 우린 슬픈 기억이 없다. 여고시절도 지금도 말이다. 혹시 매미 잡는 소년들은 이 자연의 섭리를 너무 일찍 안 천재는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