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영화 <노량>을 보았다. 2014년에 영화 <명량>을 만들고 작년에 <한산>을 만든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어떻게 그려냈을지 궁금했다.
충무공에 대한 나의 관심은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시작되었다. 깊이감 있는 간결체의 문장 안에 한 인간으로서 이순신의 고뇌가 전쟁 중인 시대적 배경과 함께 녹아들어 있어 인상 깊었다. 덕분에 이순신 장군을 새로운 각도로 바라볼 수 있었다.
십여 년 전에는 영화 <명량>에서 12척의 배로 왜선 130여 척을 격퇴시킨 역사적 사실을 스크린으로 보면서 감동했고 작년에는 영화 <한산>에서 구선을 앞세워 일본 수군을 완전 박살 내는 장면을 보고 다시 한번 감동했다.
이순신 장군의 싸움에는 용맹과 지략이 함께 있다. 세작을 통해 적의 동태를 파악해 적보다 앞서 보았고 적보다 먼저 가 닿았다. 장군이 전쟁에 임하는 태도는 약삭빠르게 뒷일을 계산하며 명예를 얻거나 높은 벼슬자리를 위함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의 목표 즉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겨야 한다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바쳤다.
이는 백 마디의 말보다 더 강해서 부하 장수들 뿐만 아니라 일개 병졸들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지므로 안으로의 기강은 자연스럽게 잡히고 부하들이 전쟁에 임하는 태도는 결의에 차 있을 수밖에 없다. 적을 알고 나를 알고 싸우니 23전 23승이라는 진기록을 만들어 내었다.
영화 <노량>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그는 철군을 명하고 숨을 거두는데 영화 전반부에서는 그의 죽음 후 고니시와 시마즈를 필두로 한 일본군의 움직임, 진린을 대장으로 세운 명의 움직임, 조선 조정이 바라보는 전쟁의 입장이 그려진다.
그들은 모두 철군하는 일본군을 조용히 돌려보내자는 입장이지만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만이 왜군의 배를 조용히 돌려보낼 수 없다는 굳은 의지로 바다를 막는다. 모두가 일본이 철군하도록 바다를 내어 주자는 의견에 장군은 한치의 타협도 없다. 나는 그런 장군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일본은 임진(1592)년에 군사를 몰고 부산으로 쳐들어와 7년 동안 우리 강토를 짓밟고 피로 물들였다. 백성들을 참혹하게 학살했으며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끝없는 고통과 치욕을 안겨 주었다. 한 나라가 총칼을 앞세워 마음대로 쳐들어와 온 나라를 지옥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짓밟히는 나라를 구해보려고 싸우다가 수많은 동료 장수들과 병사들이 눈앞에서 죽어갔다. 더구나 일본군은 아산까지 숨어들어 장군의 셋째 아들 면을 칼로 베었다. 함께 싸우던 수많은 부하들과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일본을 장군은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야만적 폭력을 일으킨 일본의 야비함과 무자비함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철군하도록 바다를 내어 준다면 그들은 언젠가 다시 쳐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장군은 일본의 야만성과 침략성을 꿰뚫어 보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바닷길을 내어주면 안 되었다.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면 안 되었다. 그렇게 노량에서 마지막 전투가 시작된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왜군들과 그들을 돌아가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장군의 결기가 담긴 처절한 전투가 1598년 노량의 겨울 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은 숱하게 일어났고 옛날보다 빈도수는 줄었지만 21세기인 지금도 전쟁은 지속되고 있는데 나에게 전쟁은 야만적인 권력자들의 힘자랑으로 비친다. 야만적인 힘자랑으로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선량한 민초들, 가진 것 없는 백성들이다.
힘은 개인에게도 나라에도 필요한 것이어서 힘을 키우고 비축해 놓아야 개인의 삶은 보다 안전해지고 나라는 보다 공고해진다. 힘을 키워서 남의 것을 약탈하고 살생하는데 쓰는 잔혹하고 야만적인 것들에게 만만히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힘은 필요하다. 남을 괴롭히고 약탈하고 죽이는 데 쓰는 힘이 아니라 지키기 위해 제대로 잘 지키기 위해 힘은 필요하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전라좌수사로 부임해 수군을 훈련시키고 전함을 건조하면서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힘을 길렀다. 육지에서 왜군이 우리 강토를 피로 물들이며 20여 일 만에 한양까지 당도하는 동안 장군은 남해 바다에서 왜군과 싸워 승리했다. 옥포에서 당포에서 한산에서 부산포에서 장군의 수군은 언제나 승리했다.
의심 많고 시기심 많은 임금과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권력자들에 의해 옥에 갇혀 고초를 당하고 나서도 장군은 정유(1597)년의 가을 바다 명량에서 12척의 배로 대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훗날의 나라 걱정으로 왜군을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게 노량은 죽기를 각오하고 지키기 위해 싸운 장군의 마지막이 된다.
둥, 둥, 둥, 장군이 치는 북소리는 칼과 칼이 맞부딪히는 지옥 같은 전투에서 병사들의 마음에 장수들의 가슴에 울림으로 남아 힘이 되고 용기가 되고 돌려보낼 수 없다는 결의가 되었다. 그렇게 조선 수군은 노량에서 왜군의 전선 200여 척을 침몰시킨다. 그리고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장군은 왜군이 쏜 총에 맞아 53년의 생을 마감한다.
스크린에서 김한민 감독은 하늘을 덮을 정도의 만장이 나부끼는 장군의 장례 행렬을 보여준다. 만가 소리와 함께 백성들의 울음소리도 들려준다. 장군을 잘 보내드리고 싶은 감독의 마음에 나도 공감하면서 눈물을 닦으며 안타까움과 슬픔, 존경하는 마음으로 장군을 보내드렸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오늘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공동체를 지킨 이들의 희생 덕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하다가 위기의 순간이 오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지키려는 마음, 자신의 안위보다 모두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큰 그런 이들의 숭고한 마음 때문이라 생각한다.
김한민 감독이 10년에 걸쳐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을 그리면서 감상자에게 주는 울림은 묵직하다. 그가 보여주는 장군의 전쟁을 따라가며 나는 임진왜란의 상처와 백성들의 고초와 장군의 고뇌와 함께 했다.
이제는 상여 소리와 함께 그 모든 것들을 보내주어야 할 때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돌아보며 조금쯤 아파하고 많이 각성하며 살아갈 일이다. 영화 <노량>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