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 나에게 죽기 전에 꼭 가 보고 싶은 도시는 로마였다. 로마는 우리 삶 전반에 잠입해 있는 서양 문명의 토대를 이루고 2,7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만큼 유서 깊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받아온 교육과 문물이 서양에서 들여온 것들이어서 나로서는 박연보다는 베토벤이, 신윤복과 김홍도보다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지난 문명과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 로마를 여행하듯 나 역시 내가 받아온 교육과 책 읽기를 통해 형성된 지식과 교양의 원류를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로마의 콜로세움 내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로마 여행을 준비한다. 이번에는 혼자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동생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 우리 4남매는 각자 사는 곳이 다르지만 다행히도 열흘 동안 시간을 낼 수 있어 로마와 나폴리를 여행하기로 했다. 비행기표는 각자 예약하고 숙소와 예매해야 할 티켓 등 전반적인 여행 준비는 내가 하기로 했다.
여행 계획의 첫 번째는 비행기 티켓팅이다. 비행기 예매는 1년 전부터 가능한데 직항을 이용할지 경유를 이용할지 선택해야 한다. 보통 직항에 비해 경유가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반 정도 가격이 저렴해서 나는 유럽여행을 할 때 경유를 이용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유와 직항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다. 그만큼 경유하는 비행기 가격이 많이 올라 있었는데 그래서 이번에는 직항을 선택했다.
성 베드로 성당 광장
비행기 티켓팅을 마치고 숙소를 알아보았다. 이 부분에 시간과 노력이 제일 많이 들었다. 여행 일정이 9박 11일임을 고려해 로마 5박, 나폴리 3박, 다시 로마 1박으로 숙소를 알아보았다. 4명이서 함께 지내려면 비용면에서도 편리성에서도 에어비앤비가 좋을 것 같았다.
주방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집을 빌리면 아침과 저녁을 해 먹고 다닐 수 있어서 비용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한국에서 기본적인 음식재료들은 준비해 가고 현지 마트에서 필요한 재료는 사서 해 먹으면 되니까 여행하면서 생활이 가능하다.
로마의 에어비앤비는 시내 곳곳에 분포해 있긴 하지만 대개 콜로세움과 바티칸 근처가 많았다. 우리는 첫째인 나부터 막내까지 50대의 나이다. 그러니 너무 무리하지 말고 체력을 고려해 잘 쉬면서 다녀야 해서 조용한 주택가로 알아보았다. 여행 7개월 전이었는데 위치와 가격, 조건이 괜찮은 집들은 벌써 예약이 끝나 있었다.
며칠 동안 로마의 수많은 에어비앤비를 구경해 보니 콜로세움 쪽보다는 바티칸 쪽이 가격이 괜찮았다. 테르미니 역에서는 멀지만 바티칸 쪽에 숙소가 있으면 바티칸 박물관과 성 베드로 성당은 걸어갈 수 있고 나머지는 지하철을 타고 움직이면 될 거 같았다. 그래서 로마에서 5박은 바티칸 근처 숙소로 예약했다.
나폴리의 플레비시토 광장 펜드로잉
그다음은 3박 4일을 머물 나폴리의 에어비앤비를 알아보았다. 나폴리의 에어비앤비는 크게 중앙역 근처, 단테광장이나 톨레도역 근처, 플레비시토 광장과 바닷가 근처로 나뉘어 있었다. 나폴리는 지하철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지 않아 소렌토나 폼페이를 갈 때 그리고 다시 로마에 갈 때 기차를 이용하므로 중앙역 근처로 숙소를 예약했다.
우리는 각자 한국으로 미국으로 영국으로 돌아가는데 로마에서 인 아웃하므로 돌아가기 전날 로마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마지막 날은 공항버스를 이용할 수 있고 나폴리에서 로마에 도착했을 때 접근성이 좋은 테르미니 역 근처 한인민박을 예약했다.
여행 3개월 전에는 로마에서 나폴리 가는 기차표를 예약했다. 이탈리아 기차는 트랜이탈리아와 이딸로, 두 가지가 있는데 난 이딸로로 예약했다. 몇 년 전에 피렌체에서 베네치아 갈 때 이딸로를 이용한 적이 있지만 하는 방법을 다 잊어버려 여행 블로거들의 블로그를 읽고 도움을 받았다.
이탈리아 기차는 시간에 따라 좌석에 따라 많은 선택지가 있고 추가 비용을 지불하며 자리도 지정할 수 있는데 로마에서 나폴리까지는 1시간 20여 분 밖에 걸리지 않아 비싸지 않은 좌석으로 예약했고 여행 가방은 분실 위험이 있을 수 있어서 가방이 보이는 자리로 좌석 지정을 해 놓았다.
바티칸 박물관 내부
로마를 여행하면서 성 베드로 성당과 바티칸 박물관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소이다. 성 베드로 성당은 무료입장이지만 바티칸 박물관은 유료이고 여행일 2개월 전에 예매가 시작된다. 하지만 관광객이 넘쳐나는 로마이므로 발 빠르게 예매해야 한다. 나는 일찍 예약한다고 했는데도 원하는 시간대는 매진이어서 아침 9시로 예약해 놓았다. 구글 지도를 검색해 봤더니 바티칸 박물관은 숙소에서 도보로 10여 분 거리니 그나마 다행이다.
로마에서 꼭 가 봐야 할 또 한 가지는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라 할 수 있다. 로마제국 시대의 개선문은 보존이 잘 되어 있지만 신전 기둥들과 돌무더기가 대부분인 이천 여 년 전 로마의 핫플레이스였던 거리 포로 로마노, 고대 로마인들에게 재미를 선사해 준 그러나 한편으로는 잔혹하게 목숨을 건 결투를 벌였던 콜로세움, 그리고 팔라티노 언덕까지 통합 입장권도 예매해 놓아야 한다.
로마의 콜로세움, 어반스케치로
10년 전 혼자 로마에 와서 맨 처음 찾아간 곳이 콜로세움이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렸던 거 같다. 멀리서도 장엄하고 웅장하고 장구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던 콜로세움... 그곳에 들어가 보고 싶어 그때 나는 1시간 넘게 줄을 서서 표를 구입했다.
지금 콜로세움 통합권은 여행일 한 달 전에 온라인 예매를 시작한다. 예매가 시작되는 날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도 좋은 시간대는 역시 금방 매진이었다. 남아있는 빠른 시간대는 오후 12시부터여서 그 시간대로 예약했다.
그밖에 로마에서 가 봐야 할 대표적인 관광지는 판테온과 트레비 분수, 스페인 계단과 포폴로 광장, 나보나 광장, 베네치아 광장 등이 있는데 나는 여유롭게 로마를 거닐었으면 좋겠어서 빡빡하게 일정을 짜지는 않았다.
로마의 판테온, 어반스케치 느낌으로
발길 닿는 대로 거닐다가 오래된 성당이 나오면 들어가 보고 카페 가서 다리 쉼 하며 얘기 나누고 그렇게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다.
나폴리는 기차표만 예매해 놓고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나폴리는 이탈리아 남부의 대표적인 도시이면서 근교인 폼페이나 소렌토 같은 도시의 접근성이 좋아 선택했다. 나폴리는 지도를 보면서 톨레도 거리와 플레비시토 광장, 델로보 성과 누오보 성, 산타 루치아 항과 같은 거점들만 머릿속에 입력해 놓고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다닐 계획이다.
이번 로마와 나폴리 여행은 외국에 살아서 자주 못 보는 동생들과 얼굴 보며 만나는 데 제일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어반스케치를 여행의 일상 속에서 그려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여행 스케치북과 펜, 휴대용 그림 도구들을 챙긴다.
여행 준비물 어반스케치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연습 삼아 여행 준비물들 - 여권, 이번에 만든 트래블로그 카드,핸드폰에 저장해 놓기는 했지만 고장과 분실 우려가 있으므로 종이로 프린트 한 예매 티켓들, 여행책들- 을 그려 보았다. 그리고 로마의 콜로세움과 판테온, 나폴리의 플레비시토 광장을 어반스케치 느낌으로 그려 보았다.
여행은 떠나기 전에는 특별한 어떤 것이라는 느낌과 설렘이 있지만 여행하는 시점에서는 -특히나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자유 여행객으로서는- 긴장도 되고 낯선 도전들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늘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 도전들은 지나고 보면 긴장감 있는 설렘이고 낯섦 속에 있는 새로움이기도 하다.
그것이 낯선 풍경이 있는 먼 여행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될지... 떠날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지금, 어떤 낯섦이 다가올지 어떤 도전을 하게 될 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