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여행하면서 꼭 들러야 하는 곳으로 바티칸 박물관을 빼놓을 수는 없다. 로마 안에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자 교황이 다스리는 바티칸 시국은 인류가 만들어 놓은 방대한 양의 귀중한 보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천지 창조>와 제단화 <최후의 심판>은 꼭 봐야 하는 그림이다.
바티칸 박물관은 관람일 두 달 전에 예매를 시작한다. 동생들과 로마에서 자유여행하기로 계획을 짠 나는 언제 예매하는지 알아보고 미리 예매를 해 두었다. 10년 전 로마여행 때바티칸 앞에서 1시간넘게 줄 서 있다가 지친 상태로 들어가 그 많은 예술품들을 설렁설렁 보고 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이번에는 제대로 자세히 보고 싶었다.
아침 9시인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는데 이른 아침부터 바티칸 근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깃발 앞에 모인 패키지 여행객도 많았고 예매하지 않은 사람들의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로마 안에 있지만 하나의 국가라서 바티칸 박물관에 들어갈 때는 예매표와 함께 여권이 필요했다. 또한 가방 검사까지 철저해서 3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바티칸 박물관 지도의 방
바티칸의 교황궁은 전체 방 개수가 1,400여 개에 이르는 대규모 궁전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또한 역대 로마 교황들이 수집한 조각과 회화, 공예품과 고문서 등은 양의 방대함과 더불어 작품의 가치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라 평가받는다.
궁전의 내부에는 고대 이집트의 유물과 그리스 시대의 조각품, 그릇들이 수많은 방에 전시되어 있다. 특히 고지도가 전시되어 있는 지도의 방 황금빛 천장은 화려하고 섬세한 그림들로 가득 차 계속 고개를 들고 감탄하면서 보았다.
사람들이 계속 밀려와 가만히 서서 구경할 수 없었기에 긴 복도를 천천히 걸으면서 팔을 최대한 올려 핸드폰으로 천장을 찍었다.나뿐만 아니라 동생들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지도의 방에서는 사진 찍고 동영상을 찍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바티칸 박물관의 <라오콘 군상>
고대 조각품으로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기원전 1세기에 그리스의 조각가가 제작한 <라오콘 군상>이다. 포세이돈 신전의 사제였던 라오콘이 두 아들을 뱀으로부터 구하려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순간을 조각한 작품이다. 나는 자세히 보고 싶어서 사람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바로 앞에서 조각품을 감상했다.
<라오콘 군상>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 인간의 몸부림을 역동적으로 생동감있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발끝의 움직임과근육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돌 속에서 사람을 꺼낸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인 조각품 앞에서 한참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회화로는 라파엘로(1483~1520)의 유명한 <아테네 학당>이 인상적이었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주문으로 교황의 개인 서재인 서명의 방에 그려진 <아테네 학당>은 1509~11년에 걸쳐 그려진 프레스코화다. 서명의 방에 들어갔을 때 한쪽벽면을 가득 채운 <아테네 학당>의 위용은 압도적이었다.
철학을 주제로 한그림 <아테네 학당>에는 성 베드로 성당을 배경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와 디오게네스, 피타고라스와 유클리드 등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들이 다양한 포즈로그려져 있다. 르네상스 시대 중요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명성을 떨치던 27세 라파엘로의 상상력과 그림 실력은 보는 이를 압도했다.
시스티나 성당에는 보티첼리와 기를란다요 등 르네상스 시대 기라성 같은 화가들의 벽화가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1475~1564)의 천장화 <천지창조>와 제단화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
30대의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천장화 <천지창조>를 그렸다. 4년 여 동안 성당 천장을 아홉 개부분으로 나누어 성경 창세기의 중요 장면들을 그려 넣었고 그 옆에는 선지자와 제사장들을 그렸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이 신과 인간의 만남을 손가락과 손가락이 맞닿을 듯 교감하는 모습으로 그린 그림인데, 그의 상상력과 표현 방식, 색채감이너무 훌륭해서 계속 고개를 들고 천장화를 올려다보았다.
바티칸 박물관 내부
시스티나 성당은 바티칸 박물관 마지막 코스라서 거기까지 오는 동안 지치고 힘들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시스티나 성당 안에서 우리는 운 좋게도 의자에 앉아서한참 동안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서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제단화로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벽화 <최후의 심판>에는 수백 명의 인간 군상들이 묘사되어 있다. 그는 최후의 날 심판자 예수를 중앙에 배치하고 그 옆에 성모 마리아를 그렸다. 그리고 성자들이 주변에 있고 천국에 있는 사람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제각각 다른 모습과 표정으로 그렸다.
단테가 책 <신곡>에서 천국과 연옥, 지옥을 표현했듯이 미켈란젤로는 그림으로 최후의 심판 날을 표현했다. 그림 속에 자신은 살껍데기가 벗겨진 채 성 바르톨로메오의 손에 들려진 모습으로 그려 넣었다. 미켈란젤로는 왜 자신을 그렇게 끔찍한 모습으로 표현했을까.
7년 동안 최후의 심판을 그리면서 미켈란젤로는 60년 이상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떠올리고 참회의 심정으로 그렇게 그린 게 아닐까,어쩌면 그것은미켈란젤로의 회개이며 정직함이고 용기가 아닐까...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티칸의 정원
박물관 내부는 계속해서 밀려오고 밀려드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심지어 어느 부분에서는 앞사람 뒤통수를 보면서 따라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바티칸에도 여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은 바티칸의 정원이다.
잘 가꿔진 잔디밭 사이로 사람들은 산책하듯 정원을 거닐고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거나 사진을 찍는다.우리도 정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망중한을 즐겼다.정원의 나무와 풀이 품고 있는 다양한 초록빛을 보며 자연이 마련한 소박하고 일상적인 그러나 다채롭고 아름다운 예술품을 감상했다.
바티칸의 정원
신록의 빛으로 사월의 생명력을 터트리는 나무들, 제각각 조금씩 다른 초록이지만 다름 속에 조화를 이루는 나무들,눈에 휴식을 주는 잔디, 벤치에 앉아서 한가로운 시간을 갖는 사람들, 청명하게 푸른 하늘, 따뜻한 봄 햇살... 그 속에서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평화로웠다.
인간은 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만들어 놓았지만 어쩌면 신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예술품에서보다는나무와 풀, 꽃과 하늘, 대기와 햇살같은 자연 속에 있는 게 아닌가,바티칸의 정원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티칸의 정원은 바티칸의 수많은 아름다운 예술품중에서도 가장 친근하고 일상적이고 다채로움을 가지고 있는,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놓은 예술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바티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