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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Apr 30. 2024

로마로 가는 길

어반스케치와 함께

드디어 출발일이 다가왔다. 지방에 사는 나는 장시간 비행에 체력을 조절하고 비행기를 여유있게 타기 위해 전날 공항 근처 호텔에 묵었다. 그리고 아침에 인천공항에서 여동생을 만났다. 비행기 체크인은 모바일로 다 이루어져서 짐만 간편하게 맡기면 되었다. 2년 전만 해도 줄을 서서 티켓을 받았는데 그러한 번거로움이 없어지고 있었다.

인천공항 어반스케치

출국장에 들어가 잠시 짬을 내어 어반스케치를 했다. 우리가 탈 비행기를 스케치하고 물감칠 할 시간은 없어서 돌아와 집에서 했다. 처음 해 보는 공항 어반스케치는 낯설었지만 내가 탈 비행기를 자세히 관찰하고 통로가 비행기와 어떻게 이어졌는지 자세히 볼 계기가 되어 새로이 배우는 시간이었다.


아시아나 오후 12시 30분 로마행 비행기는 모든 좌석이 꽉 찼고 대부분이 한국인 그것도 나이가 많은 축에 드는 패키지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다. 직항이라도 로마까지는 13시간 비행이라 비몽사몽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내리기 1시간 전에 긴장감 때문인지 정신이 말짱해져서 비행기 안에서 어반스케치를 해 보았다.

비해기 안에서 어반스케치

의자에 달린 모니터에 비춰진 비행 항로를 그려보았다. 잠시 틈을 내어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작은 성취감을 주었다. 잘 그린다 못 그린다,라는 분별과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내어 그리면서 대상과 내가 하나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어반스케치를 하면 뿌듯 마음이 차오르나 보다.


로마의 피우미치노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에는 서서히 노을이 질 때쯤 도착했다. 10년 만에 두 번째 보는 로마는 새롭고 낯설면서도 친숙했다. 뉴욕에서 와 먼저 기다리고 있는 남동생을 공항에서 만났다. 런던에 사는 남동생은 도착이 늦어서 우리 먼저 숙소에 가 있기로 했다.


공항에서 시내가는 방법은 공항철도와 버스, 택시가 있는데 우리는 세 명이고 짐은 무겁고 호스트를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게 할 수 없어서 택시를 선택했다. 공항에서 로마 시내까지는 택시비가 50유로라고 안내판에 표시되어 있었는데 그래도 혹시 몰라 택시 타기 전에 기사분께 숙소까지 얼마냐고 확인하고 택시에 올랐다.

로마 에어비앤비 숙소 어반스케치

어스름녘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호스트의 친절한 응대를 받았다. 프란체스카는 세탁기나 식기 세척기 이용법, 쓰레기 모아서 버리는 법까지 자세한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늦은 밤 런던에 사는 동생이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한 남동생들은 우리가 싸온 라면과 햇반, 반찬들을 보더니 먹성좋게 늦은 저녁을 먹었고 오랫만에 얼굴을 보는 우리는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다음날 낯선 잠자리에서 일찍 잠이 깬 우리는 아침밥을 든든히 챙겨 먹고 거리로 나섰다. 첫째 날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 가자,는 계획만 세우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서두를 것이 없는 우리는 아침부터 문을 연 동네 카페에 들러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이탈리아에스프레소지, 하면서 말이다.

로마 숙소 근처 동네 카페

어제 로마 공항에 먼저 도착해 에스프레소를 먼저 맛본 남동생은 에스프레소 양이 너무 적다며 더블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과연 로마의 에스프레소는 딱 한 입 거리였다. 현지인들이 카운터 앞에 서서 설탕 하나 넣고 한 입에 다 마시고 유유히 사라지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더구나 가격도 착해서 에스프레소는 1.5유로(2,200원), 카페라떼는 2유로(3,000원 정도)였다.


동네 카페든 관광지의 번잡한 카페든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는 맛이 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먹지 않는데 여행지에 오면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습관을 따라 해 보게 되는 것 같다. 가격이 싸면서도 맛이 좋으니 안 먹을 이유가 없다. 더구나 화장실이 부족한 유럽에서 화장실에 가려면 카페에 자주 가야 했고 50대인 우리의 체력도 안배해야 하므로 하루에 에스프레소를 두 잔 이상씩 먹고 다닌 것 같다.


지도에서 살펴본 바 숙소에서 성 베드로 성당은 걸어서 35분 거리다. 가는 길에 내일 에약해 놓은 바티칸 박물관 입구가 먼저 보였다. 그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사람들의 물결과 웅성거림이 말해주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깃발 아래 모인 패키지 여행팀이 수도 없이 보였고 예약하지 않은 사람들의 줄은 끝도 없이 늘어 서 있었다.


'와... 엄청나구나!...' 사람들의 물결에 감탄만 나왔다. 로마의 위력은 유적지를 구경하기도 전에 기가 질리 만든다.


올드 브릿지 젤라또

바티칸 박물관을 지나다 보면 로마의 맛있는 젤라또 중에 하나, 올드 브릿지가 나온다. 블로거들이 사진으로 올린 그 가게가 건너편에 보였다. 우리는 아침부터 젤라또 하나씩을 손에 들었다. 일반 아이스크림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맛있다,로 표현하기엔 너무 부족한, 질리지 않는 맛이다.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

바티칸 인파에 뺏긴 기운을 젤라토로 충전시키고 걷다 보니 멀리서도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이 보인다. 베르니니가 설계한 성 베드로 광장은 1656~67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최대 30만 명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광장에는 고대 로마제국시대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고 양편으로 타원형 열주 회랑에는 284개의 원기둥과 140개의 성인상이 조각되어 있다.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 어반스케치

베드로의 순교를 기리기 위해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 베드로 성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처음 짓기 시작했고 360년 경 완공되었다. 이후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신축을 지시해서 1626년에  완공되었다. 10년 전 성 베드로 성당을 처음 봤을 때 너무 크고 넓어서 놀라고 성당이 이렇게  화려하고 사치스러워도 되나 싶어서 또 한 번 놀랐었다.


성당 내부는 길이가 211m, 500개의 기둥과  50개의 제단, 450개의 조각상을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이렇게 만든 데에는 르네상스 시대 교황의 권력과 위세를 대성당의 외양으로 표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198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성 베드로 성당은 신에게 기도하는 집이라기보다는 인류의 문화유산을 전시해 놓은 미술관이자 박물관으로 봐 진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미켈란젤로가 25살에 조각한 피에타는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보인다. 섬세한 연민과 고통스런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걸작이다. 인파 때문에 피에타 앞에 가기도 힘들었지만 처연한 아름다움 때문에 피에타를 떠나기도 아쉬웠다.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자리에 베르니니가 만든 거대하고 웅장한 발다키노(천개)는 공사 중이었다. 10년 전에 본 발다키노의 여운이 은은하게 남아 있는 중에 이번에는 못 보게 되어 아쉽기 그지 없었는데 모든 걸 다 보고 모든 게 다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난 한 번은 봤지만 동생들은 못 보고 가서 그게 아쉬울 뿐이다.


성당과 광장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함께 찍고 각자 찍으며 시간을 보내고, 성당 내부를 둘러 보며 조각상과 그림과 예배당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돔과 천장을 올려다 보며 화려함과 섬세함과 아름다움에 눈과 마음을 뺏기고, 끝없이 늘어나는 인파에 기를 뺏기며  어느새 우리는 배가 고파졌다. 화장실도 가야 했다.

성 베드로 성당 내부

성당 밖을 나와 보니 우리가 들어올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고 물밀듯이 사람들이 성당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사람 많은 관광지에 많이 가 지만 이렇게나 많이 렇게나 계속해서 밀려드는 사람의 물결은 처음이다. 그 기세에 질리고 기운이 소진되는 것 같아 얼른 빠져나와야 했다.


그렇게 사람이 많으니 화장실 줄도 길었는데 화장실에 들어가기 위해 족히 몇 십 분은 서서 기다려야 했다. 유럽의 관광지는 어딜 가나 화장실에 인색해서 화장실을 많이 만들어 놓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걸 다행이라 여기며 화장실 입장료 받지 않는 것을 위안으로 삼게 된다.


쿠폴라에 올라가고 싶었으나 끝도 없이 늘어선 줄에 지치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인파를 보는 것마저 힘들어 포기했다. 동생들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쿠폴라에 올라가 보자는 말을 아무도 안 한다. 


나는 10년 전 혼자 왔던 여행길에서 봤으니 쿠폴라에서 바라 본 풍경은 한 번으로 족하다,라고 위안을 하며 화려하고 거대하고 인파에 몸살을 앓는 성 베드로 성당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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