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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Nov 06. 2022

바람과 사자와 연꽃처럼

고미숙의 <청년 붓다>

십여 년 전에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조선 후기에 살았던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풀어놓은 책이었다. 잘 읽혔고 재미있었을 뿐 아니라 방대한 분량인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게 만든 책이었다.


이번에는 저자가 소개하는 <청년 붓다>(출판사 북드라망)를 만났다. 저자에 의하면 왕자 싯다르타는 어떻게 하면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왕이 될 신분을 버리고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자, 붓다가 되었다.


이 책은 붓다가 되기까지 왕자 싯다르타의 고민과 출가 후 고타마로 살 때의 고행과 수행,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책은 13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각이 한 편의 에세이처럼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에세이1 청년 붓다의 사자후, <숫타니파타>에서 저자는 <무소의 뿔의 경>에 실려있는 유명한 게송을 소개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아름다운 비유적 문장 속에서 붓다의 철학은 빛난다. 깨어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외부적 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두려움 없는 사자가 되어야 하고 무언가에 미혹되지 않는 자유로운 바람이 되어야 하며 혼탁한 세상 속에서 자기중심을 지키고 청정함을 잃지 않는 연꽃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고 내면의 힘으로 깨달음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붓다는 80세에 열반에 들 때쯤 “나를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고 자신을 의지처로 삼으라”라는 말을 남겼다. 살아생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친 붓다가 자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자신이 깨달은 바 삶으로 구현되어 살아내야 할 법을 푯대 삼아 자기 자신의 삶으로 귀환하라는 뜻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으라는 말은 얼마나 무겁고 엄중하게 들리는지…. 오히려 바깥에 있는 대상이나 신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게 훨씬 쉽다. 그렇게 쉬운 길을 가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몸을 관찰하고 나라는 존재를 통찰하며 스스로 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 대신 붓다는 혼자서 가는 그 길을 찾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그 길에 무아가 있다.


나는 몇 년 전에 몸이 많이 아픈 적이 있다. 갑자기 들이닥친 통증은 일주일 동안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고 생전 처음으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이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언제 또 시작될지 몰라 두려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 고통이 수반된 괴로움은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고 죽음이 삶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알게 되었다.


몸의 극심한 통증은  대부분의 나를 차지했던 자아를 무기력화시켰고 죽음이 코 앞에 있다는 깨달음은 나의 자아를 해체시켰다. 괴로움과 두려움, 죽음과 같은 통증 속에서 자아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작아지고 작아져서 우주 속의 먼지가 되었다. 나는 이때의 경험으로 먼지가 된 자아로부터 세계를 바로 볼 줄 아는 약간의 안목을 얻게 된 것 같다.


자아를 이루고 성취하기 위해 우리는 대부분 세계와 적대적인 관계를 맺고 경쟁하고 이기고 싸우고 뺏는 관계망들 속에서 살아간다. 그 속에서 자아는 상처받고 괴로워하며 배신과 불신, 열등감과 죄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집착과 쾌락과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시간이 흘러 어느새 늙고 병들어 죽는다. 혹은 늙고 병들기 전에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욕망과 괴로움의 원천인 자아를 해체시킨 자리에는 공허함과 패배감이 아니라 순수한 기쁨이 들어찬다. 소유와 쾌락적인 삶에서 벗어나 진리를 구하는 삶으로서 자아의 해체는 억누름이나 제거가 아니라 분석과 통찰로 이루어진다. 자아의 해체는 나와 너, 우리와 너희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세계를 연결시키며 누구도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세상 만물은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체득하게 한다. 그리하여 무아는 지혜로 가는 밝은 빛이고 자비의 시작점이 된다고 저자는 쓴다.


하지만 삶의 근원적인 괴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는 무아는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자아를 태동케 하고 자아를 중요시 여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첨예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살아남으려면 나를 돋보이고 나를 내세우고 나를 부각해야 된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나를 돋보이려는 우월감이 지배욕으로, 나를 내세우려는 우쭐함이 차별과 불평등으로, 많이 차지하고 싶은 소유욕이 전쟁과 광기로 확장되는 것은 개인과 인류의 역사에서 너무나 흔하게 일어난다. 이러한 인류의 광기와 폭력과 파괴는 자아를 해체시킴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저자의 생각에 나 역시 공감한다.


하지만 자아를 해체시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고통스러운 경험이나 벼락같은 깨달음이 있어야 간신히 한 발짝 내딛을 수 있는 것 같다. 


몸의 괴로움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했음에도 나의 자아 역시  여전히 내면에서 꿈틀거린다. 그러나 자아를 완전히 해체시키지는 못해도 나를 작게 만들고 나를 낮추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충만해짐을 나는 경험으로 안다.


그 평온해진 마음으로 일상에 감사를 느끼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 수 있다. 충만해지면 충만해진 마음만큼 내가 크고 넓어져서 사람에게 친절하고 사물에 애정을 가지고 깊숙이 대하게 된다. 그러면 나의 자아는 어느덧 먼지로부터 내가 눈길주는 세상만큼 넓어짐을 느낀다. 그래서 무아는 존재와 세계의 상호작용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붓다는 궁극에 대한 깨달음과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염원으로 용맹 정진하는 삶을 살아서 우주만큼 넓고 바다처럼 깊은 무아의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저자는 탐욕과 분노, 욕망과 쾌락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디지털과 인공지능 같은 과학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2,600년 전 이 세상에 왔던 붓다를 소개한다.


불자도 수행자도 아니라는 저자는 인류의 스승으로서 붓다의 사상을 오늘에 불러들인다.그리하여 마음의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되는 길, 서로가 서로를 보듬는 길, 나와 세계가 평화롭게 상호작용하면서 살 수 있는 길을 안내한다. 그 안에는 자연과 사람과 문명과 기술이 상호 보완하면서 함께 가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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