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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Mar 21. 2023

참나무에 대한 명상

하종오 시 ‘참나무가 대나무에게’

참나무가 대나무에게


                                                                          하종오


네가 꼿꼿이 서서 흔들리는 땅에

나는 바람 잠재우며 버틴다.

너는 휘어지지 않고 휘어지지 않고 꺾여서 바치고

나는 쪼개져 쪼개져 불로 타서 바치는

우리 목숨 더 깊은 목숨 어느 나무가 바치겠는가.

숯이 되지 않는 너에게 숯이 되는 내가

불이여 불이여 노여워 소리칠 수 있다면

칼이 되지 못하는 나에게 죽창이 되는 네가

죽음이여 죽음이여 노여워 소리칠 수 있다면

죽어서 불타는 숲은 누구인가.

너는 분노하여 곧은 몸을 세우고 있지만

그러나 나는 슬픔 밑으로 뿌리를 내린다.

다만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엉키며 뿌리 뻗어서

아름다운 우리나라 산맥을 이루고 싶다.

                                             



여태껏 살면서 한 번도 눈길 주지 않았던 참나무를 생각한다. 진짜라서 참인, 참되어서 참인 참나무라는 이름을 불러 본다.


식물도감에는 참나무라는 이름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졸참나무와 굴참나무, 갈참나무와 신갈나무, 떡갈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총칭하는 참나무를 마주한다. 열매인 도토리는 다람쥐나 청설모, 사람에게 내어주고 나무줄기는 숯으로 내어주는 참나무의 쓸모를 생각한다. 살아서의 쓸모와 죽어서의 쓸모가 다르지 않은 참나무의 기질과 마음을 바라본다.


도토리가 싹을 틔우고 가지가 자라나 거목이 될 때까지 자라고 떨어지고 다시 또 자라고 떨어지길 반복했을 떡갈나무와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잎을 떠올려본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뜨거운 열기가 후끈거리고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새하얀 눈송이를 맞으며 나이테를 키워갔을 신갈나무와 졸참나무와 갈참나무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흔들리는 땅에서도 버티고 참으며 꿋꿋함을 배워갔을 참나무의 인생을 생각한다. 날카로운 도끼에 쪼개지고 또 쪼개져 누군가의 온기가 되고 연료가 되는 참나무, 시뻘건 열에 분노하는 마음은 다 태워버리고 슬픔은 품에 안고 까만 숯으로 부활하는 참나무의 마음을 생각한다.


1979년 창작과비평에 실렸던 하종오의 시 '참나무가 대나무에게'를 읽고 또 읽어본다. 버티고 쪼개지고 자신을 태워 숯이 되는 참나무가 휘어지지 않고 분노가 죽창이 되어 살아가는 대나무에게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본다.


젊은 시절을 대나무처럼 살아온 나에게 이제는 버티고 견디는 힘을 기르라고, 누군가의 배경이 되고 온기가 되어 참나무처럼 살아가라고 말을 거는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세상의 이치를 조금쯤 알게 된 나는 이제야 여태까지 보이지 않았던 참나무에게 시선이 가고 마음이 간다.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살지만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는 참나무는 사람으로 치면 꿋꿋하고 믿음직한 뿌리 같은 이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너무 크고 넓어서 혹은 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참나무의 삶이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한다.


대나무의 꼿꼿하고 곧은 삶과 참나무의 버티고 견디는 삶은 너무나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뿌리 뻗어서 아름다운 길, 화해와 상생의 길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에 나는 공감한다.


참나무가 주는 울림에 귀를 기울이며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따듯한 온기를 나눠줄 수 있는 삶은 참 멋진 삶이 아닌가, 를 읽으면서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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