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밝은 숲 Dec 22. 2022

'추운 사랑'을 낭독하다

시 낭독 모임

지난여름, 오랜만에 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줌(zoom) 모임을 제안했다. 코로나 시대라서 대면 모임을 못 하게 돼 줌으로 모임을 하고 있는데 참 좋다고, 우리도 줌으로 만나 시 낭독을 하며 의견을 나누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시 낭독 모임이 여름을 지나 가을을 거쳐 한겨울을 지나고 있다.


처음에 나는 신기술에 낯을 가렸지만 반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은 아주 익숙해졌다. 줌 호스트인 친구가 단톡방에 올린 아이디를 입력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화면이 열린다. 내 얼굴이 보이고 친구들 얼굴이 보이면 반갑고 여전히 신기하다. 더구나 목소리까지 들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모임을 시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2주에 한 번씩 줌을 열어 1시간 30분 동안 우리는 대여섯 편의 시를 낭독하고 감상을 이야기한다.


친구들이 낭독하는 시를 듣고 있으면 시가 더 가까이 다가온다. 친구가 읽는 시를 따라가다 보면 친구의 목소리를 통해 시가 내게로 들어온다. 묵직하게 혹은 아프게 혹은 힘 있게 와닿는다. 마음에 드는 시구에 나도 모르게 밑줄을 그어 가며 듣는다. 눈으로 읽는 것과는 다른 귀로 듣는 집중의 힘이 나를 시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내 차례가 되어 시를 낭독하다 보면 눈으로 시를 읽을 때와는 다른 몰입을 하게 된다. 눈으로만 보이던 시어가 입과 귀를 통해서 공감각적으로 살아난다. 들깨 냄새가 풍기고 흐느낌이 들리고 스러져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시대의 아픔이 느껴지고 사라져 가는 고향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시 한 편을 두 번씩 낭독해 읽고 난 후 우리는 시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한다. 어떤 친구는 시의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며 오늘날에 빗대어 얘기하고 또 다른 친구는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을 화자의 상황과 연관 지어서 이야기한다. 나는 나대로 인상적인 시구들을 통해 화자의 감정과 공감했던 부분들을 이야기한다.


친구들의 감상을 듣고 있으면 내가 지나쳐 간 시의 부분들을 새로 발견하거나 친구의 새로운 면을 발견해가는 즐거움도 있다. 대학 때부터 알게 된 우리의 인연이 30년도 넘었는데 그 세월로도 알 수 없었던 친구들의 세밀하고 여린 부분들을 시를 매개로 알게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서로 가벼이 안부를 묻는 모임에서는 나오기 힘든 내면의 생각이나 힘들었던 경험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시집은 창작과 비평사에서 출판된 <한국대표시선 3>인데 1970~80년대 쓰인 시들이 실려 있다. 유신과 독재의 시대, 가난한 농촌을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산업화로 가는 시대가 배경인 만큼 사회참여적인 시와 서정시가 섞여 있다.


예전에 많이 읽었던 김지하나 양성우, 정희성이나 김준태와 같은 시인들의 시를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지만 새롭게 알게 되는 시들이 있어 시 낭독 모임의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이하석의 '못 2'나 이성선의 '저녁산을 바라보며', 김승희의 '추운 사랑' 등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특히,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김승희 시인의 '추운 사랑'을 읽으며 우리는 모두 마음 아파했다. 1983년에 발표된 시가 꼭 지금 일어난 참극의 시대를 얘기하는 것 같아서였다. 시는 이렇게 노래한다.


추운 사랑

                                                

아비는 산에 묻고

내 아기 맘에 묻네,

묻어서

세상은 재가 되었네,


태양의 전설은 사라져 가고

전설이 사라져 갈 때

재의 영이 이윽고 입을 열었네

아아 추워 -라고,


아아 추워서

아무래도 우리는 달려야 하나,

만물이 태어나기 그 전날까지

아무래도 우리는 달려가야 하나,


아비는 산에 묻고

내 아기 맘에 묻어

사랑은 그냥 춥고

천지는 문득 빙하천지네......

            

          <1983년, 김승희 시집 '왼손을 위한 협주곡'>



특히  연과  마지막 연의 아기 맘에 묻는다는 시구가 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떠올렸다. 자식의 마지막을 몰라서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부모들의 설움과 울음에 공감없는 권력이  빙하기와 다름없다. 천지가 빙하천지였던 80년대 시의 상황이 지금 다시 회귀한 듯해 슬프고 답답하고 마음이 시리다. 


그렇게 우리는 시를 낭독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감하고 함께 아파했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은 추운 겨울, 여름부터 시작한 시 낭독 모임이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간다. 오래된 친구들과 시를 읽으며 새롭게 시를 느끼새롭게 친구를 배워간 시간들이었다. 일상은 시를 통해 깊어졌고 친구들과 시 낭독 모임을 통해 이야기의 도 넓어졌다.


내년에 계속해서 시를 낭독하고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힘듦을 나눌 수 있기를, 리고 우리  권력이 고통받는 사람들 외면하지 않고 감싸안아 주기를 바라본다.





이전 06화 빈 집의 엄마 걱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