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가

톨스토이 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by 밝은 숲

파홈은 시골살이를 하는 농부다. 그는 도시인들의 화려한 삶을 부러워하지 않고 땅만 넉넉하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바쳐 농사를 짓고 땅을 넓혀간다. 땅이 넓어지면 파홈은 만족스럽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땅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 다시 열심히 일을 하고 더 넓은 땅을 갖게 된다.


어느 날, 한 나그네가 찾아와 싼 값에 원하는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는 지역을 알려준다. 1주일이 걸려 찾아간 그곳에서 파홈은 마을사람들로부터 하나의 조건을 듣게 된다. 하루 동안 자신이 걸어갈 수 있는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지만 단, 해가 지기 전에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그렇지 못하면 돈을 전부 잃게 된다는 조건이었다.


다음 날 아침 빵과 물병과 삽을 들고 출발한 파홈은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삽으로 땅을 파 자신의 소유라는 표시를 해 둔다. 해의 방향을 가늠하고 뒤돌아서려고 할 때마다 농사짓기에 너무 좋은 땅이 나타나 파홈은 여기까지만, 이라고 혼잣말을 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초원의 해가 기울어가자 파홈은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어쩌면 해 지기 전에 출발점에 도달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불안감, 출발점에서 모자에 넣어둔 자신의 자본금 1천 루블을 모두 잃게 될 걱정까지 합해져 사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한다. 장화도 벗어던지고 마지막 힘을 다해 뛰어서 마침내 파홈은 출발점에 당도해 모자를 움켜잡고 쓰러진다. 쓰러진 파홈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숨을 거둔다. 하인은 땅을 파서 파홈은 묻는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서 톨스토이는 파홈에게 필요한 땅은 3아르쉰(210cm)으로 충분했다고 말한다. 내 눈길은 ‘충분하다’라는 형용사에 오래 머문다. 그리고 파홈의 명을 재촉한 건 욕심이나 욕망이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욕심'의 사전적 의미는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고 '욕망'은 부족함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이다. 지나치게 탐하는 마음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주지만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욕심이나 욕망하는 마음은 필요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파홈도 땅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더 많이 일했고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욕망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점점 더 많은 땅을 소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파홈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했던 걸까. 사실, 살다 보면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항상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는 것도 아니다. 정직하게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고 무언가를 갖게 되는 것도 어쩌면 운이 따르는 것이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홈은 감사할 줄 몰랐고 그래서 만족도 몰랐다. 그런 이유로 그는 계속해서 땅을 넓혀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마를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땅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의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서 돌아설 때를 놓치고 때 이른 죽음을 재촉하게 되었다.


파홈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참 어리석은 인생이고 허무한 삶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자꾸 충분하다는 형용사를 되뇌게 된다.


19세기에 살았던 톨스토이의 질문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를 오늘날 우리 시대에 맞게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로 바꿔 읽어본다. 그리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동력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파홈이 갖고 있었던 욕심이나 욕망은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그것들이 마음속에 일어나면 무언가를 하고 싶고 이루어내고 싶어진다. 그 적극적인 마음이 의욕으로 발전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도 하고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욕심을 내거나 분수에 넘치는 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파홈이 파국을 맞듯이 뜻하지 않은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파홈이 욕심을 줄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만족하면서 살았더라면 그는 더 오래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욕심을 조절하는 일, 욕망을 절제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욕심이나 욕망은 양날의 검처럼 삶에 있어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무언가를 얻거나 이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욕심이 필요한데 그것을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조건에 맞게 다룰 줄 아는 것, 그것으로 인해 삶이 의욕적이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조절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또 하나, 파홈이 간과한 문제는 죽음이다. 삶의 끝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죽음이다. 우리는 누구나 살다가 죽게 되겠지만 죽음은 먼 미래의 일이거나 남의 일이거나 생각하기 꺼려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게 속 편한 일일 수도 있지만 죽음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에는 큰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파홈이 그날 그렇게 죽을 줄 알았더라면 그는 아무리 좋은 땅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적당히 넓은 비옥한 땅을 차지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죽음을 인지하고 산다는 것은 욕망을 조절하게 하고 욕심을 덜 부리게 되어 지금 현재를 만족하고 감사하게 만든다. 그래서 오히려 이 지상에서의 삶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들어준다 생각된다.


톨스토이는 파홈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결국 인간의 생 마지막에 가 닿을 수밖에 없는 곳, 우리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죽음을 성찰하게 만든다. 그래서 인생의 종착지는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깨닫고 사는 것,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얼마만큼의 욕망을 가져야 하는지,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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