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1인칭 시점의 소설이다. 키는 1미터를 간신히 넘기고 신발사이즈가 170밀리미터였던 시절의 '나'는 날아다니는 게 가능할 거 같고 나무 타기를 퍽이나 좋아해서 나무 위에서 빵을 먹고 잠을 자고 책을 읽었다.
장자크 상페 그림
엄마의 잔소리와 형들의 심부름에서 해방될 수 있는 곳,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는 곳, 그래서 나무 위의 세계는 어린 나에게 탁 트인 시야만큼 가슴이 뻥 뚫리는 해방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호수 아랫마을에 사는 '나'는 자전거를 타고 피아노를 배우러 호수 윗마을까지 간다. 그리고 나이 든 미스 풍켈 선생님과 그녀의 코딱지가 쳐야 할 건반에 묻게 된 과정과 그로 인해 발생한 상황들에 대한 에피소드는 깔깔대며 웃고 싶을 만큼 유머러스하다.
자살하려고 올라간 나무 위에서 '나'는 나무 아래에 있는 좀머 씨를 보게 된다. 사시사철 하루종일 걷기만 하는 좀머 씨가 숲 속에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땅바닥에 눕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는 잠시의 편안함을 누릴 새도 없이 깊은 한숨을 쉬며 벌떡 일어난다. 그리곤 배낭에서 빵을 꺼내 허둥대며 먹어 치운다. 그다음엔 지팡이를 일으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서둘러 걷기 시작한다.
좀머 씨의 깊은 한숨에 섞인 고통과 홀가분해지고 싶은 갈망과 절망의 참담함을 느낀 ‘나’는 미스 풍켈 선생님의 코딱지로 인해 느낀 세상의 불공정과 포악스러움으로 인해 자살하려던 생각이 싹 사라진다.
장자크 상페 그림
전쟁 직후 마을로 이사 온 좀머 씨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루종일 걷기만 하는데 그의 걷기는 목적지가 없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추우나 더우나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그래서 좀머 씨가 걸어 다니는 근동 60km 이내에서 좀머 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작 그를 걸어 다니는 풍경으로 인식할 뿐 그에 대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모른다.
그의 걷기는 목적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잰걸음으로 빨리 걷고 쉬지 않고 걷는다. 하루에 열두 시간 혹은 열여섯 시간까지 걷는다. 어깨 높이만큼 올라오는 호두나무 지팡이를 잡고 배낭을 메고 겨울에는 장화를 신고 여름에는 반바지를 입고 마을 사람들이 자가용을 가지게 되어도 버스를 타고 다녀도 사람들이 말을 걸어도 빨리 가야 한다고 더듬거리며 말하곤 조급하게 걷기만 한다.
세월은 흐르고 영원할 것 같던 나무 타기도 시시해진 16살 즈음 저녁 무렵 '나'는 호수를 지나오다 좀머 씨를 만난다. 인형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던 그의 아내는 죽고 지하에 있던 셋집에서 다락방 셋집으로 옮겨 살고 있던 좀머 씨가 호숫가에 서 있는 모습을 본다. 장화를 신은 그가 한 발 한 발 호수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본다. 엉덩이가 잠기고 어깨가, 턱이 깊은 호수에 잠기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라진 좀머 씨의 밀짚모자만 둥둥 흘러가는 것을 본다.
'나'는 좀머 씨가 물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그 일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는다, 좀머 씨의 자살을 목격한 이 소설의 화자인 내가 그의 죽음에 대해 침묵한 것은 제발 나를 내버려두라는 절규에 가까운 그의 외침을 들었고 공포와 절망이 섞인 눈빛, 두려움에 가득 찬 그의 표정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좀머 씨 이야기>는 좀머 씨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데,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놓음으로써 어두움과 밝음이 교차하고 우울이 따뜻한 미소로 상쇄되기도 한다.
장자크 상페 그림
화자인 나는 자살하려고 올라간 나무 위에서 의도치 않게 나무 아래에 있는 좀머 씨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 들어있는 무언가를 느끼고 보았다. 그래서 그의 쫓기듯이 사는 삶, 두려움에 휩싸여 사는 삶,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삶,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 필사적으로 걷고 있는 삶을 알게 된 것이다.
좀머 씨의 그러한 삶의 상처를 작가는 어린 화자의 시선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은 단순하고 투명해서 인생과 영혼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머리가 벗겨지고 깡마르고 하루종일 걷기만 하는 나이 든 좀머 씨도 젊은 시절에는 숱 많은 검은 머리와 확신에 찬 입매를 가지고 있었다. 젊은 그의 눈빛은 집요해 보였고 미소는 자신감이 지나쳐 뻔뻔해 보일 정도라고 화자는 묘사한다. 그랬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간과 경험은 우리의 삶을 성공의 세계로 데려가기도 하지만 실패와 좌절의 세계로 데려가기도 한다. 더구나 전쟁이라는 천지가 뒤바뀌고 운명이 갈라지는 재앙을 겪고 나면 그가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살아남았다는 것이 커다란 상처가 되기도 한다.
젊은 시절 여권 사진 속 좀머 씨의 야망과 열정과 욕망이 두려움과 절망과 공포에 찬 삶으로 바뀐 것은 시간이 준 무게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겪은 전쟁, 혹은 전쟁 같은 경험의 후유증으로 인해 생겨난 깊은 상처이리라. 그래서 좀머 씨는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자연 속에서조차 편안함을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혹사사키며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기로 쉬지 않고 걸었을 것이다.그리고 결국 그는 스스로 호수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괴롭고 힘든 삶의 여정을 마쳤으리라.
장자크 상페의 단순하면서도 따뜻한 그림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묘사한 외로운 좀머 씨를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섬세하게 잘 묘사하고 있어서 책을 읽는 감동이 배가되었다.
어린 아이인 화자는 성장해 인생 최고의 시절을 보낼 것이고, 좋은 시절 다 보낸 좀머 씨는 자신의 방식대로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삶의 방식과 죽음의 방식, 아이와 노인, 밝음과 어둠, 유머와 절망이 교차한다. 하나의 생이 있고 또 하나의 죽음이 있다.
짧은 이야기지만 다채롭고 따듯하며, 재미있고 우울하며, 밝고도 어둡다. 무엇보다 좀머 씨의 삶과 죽음의 방식이 안타깝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