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에 살면서 <관촌수필> 읽기

이문구의 <관촌수필>

by 밝은 숲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풍광이 참 좋다.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한 아파트는 앞과 뒤가 막힘없이 확 트였는데 15층에 위치한 거실 베란다 쪽은 먼 산이 시내를 감싸 안은 듯하고 맞은편 부엌 쪽으로는 간사지 논이 끝나는 자리에 서해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렇듯 풍광 좋은 동네는 관촌마을이라 불리는데 이문구의 소설 <관촌수필>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 관촌마을이 배경이다. 작가의 체험이 고스란히 소설화된 책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해 살던 작가가 그리움과 참혹한 기억으로 가득한 고향에 들러 남의 집이 된 고향집과 관촌마을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한다.


그 추억 속에는 할아버지와 옹점이, 어머니와 아버지, 동네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관촌 마을이 있다. 연작소설 속 여덟 편의 이야기는 작가의 30대를 현재로 삼은 1970년대와 작가의 어린 시절이 들어있는 1940년대와 6.25 전쟁 부근의 시간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이십여 년을 이 동네에서 살아온 나는 <관촌수필>을 다시 읽으며 감회가 새롭다. 작가가 경험했을 1940년대와 1970년대 관촌마을 풍경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마을풍경을 비교해 가며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첫 이야기 ‘일락서산‘에서 화자는 기차를 타고 오랜만에 고향인 한내읍(지금의 보령시)에 다다른다. 작가가 한내읍의 중심지인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쯤 그러니까 1970년대에 나는 그곳에서 지척인 중앙시장에 살고 있었다. 시내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인 관촌 마을로 작가가 찾아가는 대목은 그래선지 감회가 새로웠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풍경들을 작가도 보면서 지나갔겠구나, 싶어서 묘한 기분도 들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관촌마을은 먼 변두리 동네였다. 그 당시만 해도 기차역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돼 내가 살던 시장은 지역의 중심지였다. 대형 마트도 쇼핑몰도 없던 시대에 장을 보려면 주변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시내로 나와야 했기에 장날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시장은 흥성거리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실 지나다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시장 안 어느 집이든 아이들이 많아서 우리는 골목에 나와 놀기도 하고 이웃에 사는 또래 친구를 찾아가 소꿉놀이 하며 시간을 보냈다. 특히, 신발 가게를 하던 영선이네는 참새가 방앗간에 드나들듯 자주 오가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시장 사람들은 가게와 살림집이 붙어있어서 가게 뒤에는 한 칸이나 두 칸 정도의 방이 있고 연탄을 연료로 방을 데우고 아궁이와 석유곤로가 있던 부엌과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다. 부엌을 벗어나면 커다란 고무다라이에 항상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곳에서 엄마는 김치를 담그거나 빨래를 했다. 대문을 나서기 전 오른쪽에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자그마한 옥상이 있었는데 여러 개의 장독이 놓여 있고 빨랫줄에는 늘 우리들의 빨래가 널려 있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다섯이나 되었으니 세탁기가 없던 시대 엄마의 빨래는 고되었을 것이고 세끼 밥상을 차리는 일도 큰일이었을 텐데 오 남매의 엄마에게 그런 일은 일상이었으리라 생각하니 돌아가신 엄마가 새삼 그리워지고 마음은 아득해진다.


신발가게를 하던 영선이네, 양품점을 하던 종미네, 슈퍼를 하던 선미네, 친구 순봉이네, 속옷 가게를 하던 은숙이네…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동네 아이들과 70년대 중앙시장 풍경이 기억 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소설 속 화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어린 시절 풍경을 엿볼 수 있는 관촌 마을에 호기심을 가지고 읽게 되는데 내 어린 시절 멀게만 느껴졌던 동네, 국수 공장이 있고 추레한 이발소가 있고 블록 담장에 반공방첩이라고 빨간 글씨로 쓰여 있던 그 마을의 풍경이 떠오른다.


대학시절 장항선 기차를 타고 고향에 들어오면 맨 먼저 보이는 동네가 갈머리 부락이었다. 갈머리에는 관촌마을이 있고 작가의 어린 시절 논이나 밭이었을 그곳에 지금은 아파트가 지어졌는데 나는 지금 그 관촌마을에 살고 있다.

마을 초입에는‘관촌수필길’이 만들어져 이문구의 <관촌수필>에 대한 소개글과 안내판이 걸려 있다. 나는 오랜만에 다시 잡은 <관촌수필>을 읽으면서 동네에 조성되어 있는 ‘관촌수필길’을 걸어본다. 아파트를 끼고 솔숲을 지나면 뒷동산 부엉재가 나온다. 작가의 어린 시절 놀이터였던 부엉재, 그리고 칠성바위 자리를 돌아본다. 북두칠성과 같은 모양이어서 칠성바위라 이름 붙은 바위가 지금은 사라져 그 터만 남아 있다.


작가가 나고 자란 커다랗고 넉넉했던 집도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토정 이지함의 지팡이가 나무가 되어 사백여 년 동안 마을을 지켰다는 내력 가진 왕소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집은 헐리고 바위는 치워지고 왕소나무는 고사하고 갯벌은 간사지논이 되고 철길은 어졌다.


옛 모습이 남아있지 않고 사라진 것들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헛헛함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낡고 오래된 것들 대신에 개발과 도시화의 바람을 타고 세련되고 현대적인 물질문명이 대체되었지만 그 편리함만큼 불편했던 과거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이문구의 <관촌수필>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읽힌다. 이제 나는 한 편 한 편이 독립된 이야기로 꾸며져 있는 <관촌수필>을 지나간 사람과 일들에 대한 애도와 추억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음미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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