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의 문인 이문구(1941~2003) 선생의 <관촌수필>은 연작소설집이다. 총 여덟 편으로 구성된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인데 첫 번째 이야기 제목은 1972년 5월 문학잡지 <현대문학>에 발표된 ‘일락서산’이다.
나는 작가가 그려낸 소설 속 문장들을 따라가며 1940년대 관촌마을에서 종갓집과 같은 역할을 하며 그만한 풍채를 지녔던 한산 이 씨, 소설 속 화자의 집 속으로 들어가 본다. 대지 350여 평에 건평 70여 평의 ㄷ자로 된 집은 남향으로 앉은 덩실하고 우아한 집이다.
뒷담장은 열두 그루의 밤나무가 에워싸고 대문 앞에는 개오동 나무가 자라고 있다. 울안 정원에는 모란과 매화, 대추나무와 치자나무가 있다. 뒤꼍에는 감나무와 앵두나무, 석류나무와 복숭아나무 등이 심어져 있다.
건물 구조는 사랑채와 안채, 바깥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랑채에는 커다란 장지틀을 가운데로 널찍한 방이 두 개다. 사랑채의 안방은 할아버지의 은둔처이고 윗방은 아버지의 응접실로 사용된다.
안방은 할아버지의 손님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검버섯 속에 고색이 찌들어가는 시대의 고아 이조옹들의 집산장으로 표현된다. 아마도 시대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사는 유생들의 모임 장소가 할아버지의 안방이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아버지가 쓰는 윗방은 안방 손님들보다 훨씬 더 누추한 사람들로 붐볐는데 나무장수, 대장간 풀무쟁이, 뱃사공, 새우젓 장수, 목수, 땜장이들이 단골 마실꾼들이었다. 할아버지와 달리 아버지는 사농공상 서열을 망국적 퇴폐 풍조로 여겨 계급에 층하를 두지 않았고 오히려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삶을 살았다.
해방 전후 시대에 노동자와 농민, 무산 계급을 위한 일을 함으로 보령과 서천, 청양 지역의 남로당 지도자가 되었는데 덕분에 집 안은 시도 때도 없는 경찰의 검문검색으로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다. 아버지는 예비 검속으로 읍내 유치장에서 구금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사상에 흔들림이 없었으니 어렸던 화자에게 아버지는 외경스러운 존재이면서도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존재가 아니었을까.
집에 있을 때조차 아버지의 사랑방에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으니 어린 화자는 아버지의 살가운 정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래서 화자의 기억 속 아버지는 위엄과 투지가 어려 어렵고 두려운 분이었다고 고백한다.
집에 없던 아버지 대신 함께 지냈던 할아버지에게서 어린 화자는 친근한 육친의 정을 느끼며 자랐을 것이다. 그래서 30대가 된 화자가 관촌마을에 들어섰을 때 칠성바위 쪽에서 지팡이에 굽은 허리를 의지한 채 당신의 헛묘를 굽어보고 있는 할아버지의 환상을 만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화자가 태어났을 때 이미 여든 살로 얼마나 더 살 지 알 수 없는 나이가 된 할아버지는 10년 동안 자신의 안식처가 될 묏자리를 찾아다녔는데 바로 집 뒤 칠성바위 근처가 명당이라는 것을 알고는 가묘를 만들어둔 터였다. 칠성바위 근처에서 옹점이는 봄나물을 뜯고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의지해 자신이 누울 자리를 둘러보고 가다듬는 게 일과였으리라.
칠성바위 근처에서 놀던 어린 화자는 헛묘 앞에서 할아버지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할아버지, 요기가 무슨 믱당이래유? 까시덤풀만 우거진 황토밭인디......"
"조 바위를 보려므나. 보매 보기루두 똑 북두칠성 형상 아니겄느냐."
"그렇다구 밭이다 모이(묘)를 써유? 할아버지는 돌아가는 게 좋신 모냥이네유."
"게 다 마찬가지여, 먹구 헐일 웂이 지달리는 게나, 일찍 가서 누워 잔디찰방허는 게나......"
충청도 방언이 찰진 대화글을 읽다 보면 여든아홉의 상투 머리를 한 할아버지가 보이고 개구쟁이 모습의 어린 손자가 그려진다. 할아버지의 말년은 손자에게 글을 알려주고 예의범절과 생활 습관을 만들어주는 데에서 보람을 찾았다.
글을 배우면서부터 글의 내용을 실천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어린 손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할아버지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고 놋요강과 놋타구를 가시고 사랑방을 물걸레질 한 다음엔 해가 솟아오를 때까지 무릎 꿇고 앉아 전날 배운 공부 내용을 외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화자에게 친근한 육친일 뿐 아니라 한문을 깨우쳐 주고 생활의 모범이 된 스승이요 정신의 기본 틀을 만들어준 분이었다. 그러므로 화자의 어린 시절은 할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에 대한 기억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세월이 흘러 나이 든 어른이 되어서도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사무치는 것일 게다.
집 안은 6.25가 난 1950년에 쑥대밭이 되었다. 아버지와 형이 죽고 아들과 큰손자를 앞세운 채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화자는 18년 동안 살던 집과 땅을 처분하고 관촌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그리움과 비애가 섞인 마음으로 남의 땅이 되어버린 칠성바위 언저리와 옛 집을 돌아보며 작별 인사를 한다.
<관촌수필>의 첫 번째 이야기, '일락서산'을 읽다 보면 어린 화자가 느꼈을 어렵고 두려운 아버지, 유학자적 틀 속에서 살지만 친근한 할아버지, 자상한 어머니, 부엌데기지만 친구이자 가족으로 여긴 옹점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구수한 충청도 방언의 대화글은 읽는 재미가 있고 옛 집과 관촌마을의 70년대 모습과 40년대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는 대목에선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집 안의 아픔이 우리 현대사의 굴곡진 시대적 아픔과 맞닿아 있어 스산하고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그리고 사대부 가문에서 유생으로 머문 할아버지의 삶을 통해 조선시대 양반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 점, 해방 전후 이데올로기로 인한 시대적 아픔 속에서 풍비박산이 난 집안 모습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한 모습이 그려졌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문학성과 역사성을 함께 가졌다고 보아진다.
2023년의 관촌마을
작가가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린 옛 집과 고향 마을을 방문해 지나간 시간들을 톺아보며 써 내려간 이야기 ‘일락서산’을 읽으며 관촌마을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는 베란다 창 밖으로 작가의 생가터를 바라본다. 작가의 생가터가 눈앞에 있기는 하지만 지금 옛 집은 사라진 지 오래고 그 언저리쯤에 오래된 단층주택들만 조용히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앉아있다.
이제 나는 사라진 것들이 주는 여운과 '일락서산', 서산에 해는 져서 긴 여운을 품고 있는 이야기의 다음 여정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