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나는 스페셜리스트다-4
현장에 도착하면 집주인이나 인테리어 업체 담당자나 또 다른 기술자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사입니다. 인사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나의 첫인사가 상대방에게 나의 첫 이미지를 결정합니다. 인사의 최소한은 내가 여기에 왔음을 알리는 것이죠. 밝게 웃으며 자신감 있게 인사한다면 상대방에게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인사를 먼저 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숙이고 들어간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은 인사를 받아 주는 사람이지, 먼저 인사를 해야 하는 아랫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하죠. '필요한 사람이 먼저 나에게 인사를 한다'는 것이 무의식 속에 있습니다. 잘못된 자존심과 우월의식이죠.
저는 아파트 현장에 가면 경비선생님이나 미화 여사님이 보이면 인사를 합니다. 경비선생님에게 웃으며 인사하면, 무거운 제품과 연장을 편하게 나를 수 있는 주차 자리도 안내해 주고, 공동현관문도 열어줍니다. 이렇게 도움을 받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갑자기 배가 아파 큰일을 봐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도 있었는데 아파트 경비선생님께 큰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제가 욕실 세팅하러 가는 곳은 변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변기는 제가 설치해야 하는 것이라) 경비선생님의 배려를 받게 되면 저의 스트레스와 피로도는 많이 줄어듭니다.
미화여사님께도 엘리베이터나 공동현관 앞에서 마주쳐 인사를 하면,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곳도 알려주고(제품 설치한 후 버려야 하는 종이박스가 많이 나옵니다) 힘든 일 한다고 격려도 받습니다. 아파트 현장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인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도움을 받기 어렵습니다. 경비선생님이나 미화여사님이 굳이 저에게 먼저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진 않았을 테니까요.
경비선생님 또는 미화여사님을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치면 말을 건넵니다. 초면에 너무 치근대면 실례지만, 적당한 한두 마디는 서로에게 도움 되지 않을까요? 상대방의 어려움, 관심사에 대해 말하면 더 좋겠죠? "비 와서 일하기 힘드시겠어요!" 또는 "땡볕에 고생하시네요!" 이 정도만 해도 괜찮습니다.
아파트나, 건물 주차장에 도착하면 저도 모르게 경비선생님이나 미화여사님, 주차관리 하는 분께 인사를 하게 됩니다. 습관이 되어 버렸어요. 경비선생님이나 미화 여사님은 대부분 제 부모님 정도의 나이여서 그런지 정도 많고, 친절합니다. "일 끝나면 경비실에 들러 커피 한잔 마시고 가"라고 하는 경비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기술자 중에 인사를 잘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지금도 제가 경비선생님이나 미화여사님께 밝고 깍듯하게 인사하면, 제가 나이도 어리고(?) 기술 입문자처럼 보이는지 저에게 잘해주려고 하십니다. 저는 느낄 수 있어요!
현장에 가면 저 혼자가 아닌 다른 분야의 기술자와 같이 일 할 때도 많습니다. 전기, 도배, 인테리어필름, 주방싱크, 페인트, 돔천장 기술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인사 없는 것은 물론 말 한마디 걸어주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빨리 끝내고 가려고 하는 것도 있고, 굳이 일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한테 인사하고 말을 건넬 필요성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입니다.
다른 기술자와 일하면서 도움 받아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공구를 빌려야 할 상황도 생길 수 있는 것이죠. 처음 봤을 때 인사를 했거나, 대화를 조금이라도 했더라면 부탁하기 훨씬 수월합니다. 예전에 도배하는 팀을 만났는데, 인사를 밝게 하니 나중엔 그분들이 믹스커피도 타주고, 컵라면도 나눠 주면서 농담도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욕실세팅 작업을 하다 보면, 돔천장 기술자와 일을 해야 하는 공간이 겹칠 때도 있습니다. 욕실은 공간이 좁아 한 사람이 비켜 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죠. 제가 욕실 2칸 세팅하는데 하루 온종일 걸리지만 돔천장 기술자는 한두 시간 작업하고 다른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제가 비켜드리고 배려해야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대화도 하고 음료도 나눠마시면서 친해진 돔천장 기술자가 있습니다. 나이도 비슷하고, 공통관심사가 있어서 친해졌어요. 서로 명함 교환하고 필요할 때 일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른 분야의 기술자와 친분관계를 유지하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서로 일을 소개해 줄 수 있고, 궁금한 부분을 해결해 줄 수도 있습니다. 분야가 다르더라도 기술자들끼리는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죠. 같은 분야의 기술자라면 협업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일하면서 마주치는 분들이 있으면 연락처를 교환합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고, 제가 느꼈을 때 그 기술자가 성격 좋고 일도 잘하는 분들의 연락처만 받는 답니다. 나중에 도움이 됩니다.
작업을 요청하는 집주인과 인테리어업체 사장님께 인사를 잘 해야 합니다. 인사를 하는 태도 또한 중요하죠. 표정은 별로 신경 안 쓰고 형식적으로만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분들도 많은데, 기왕 하려면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게 좋죠. 억지인사는 인사를 받는 상대방도 느껴집니다. 자신은 친절한 사람이지만, 표현을 못하면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 됩니다.
인사를 잘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마음의 여유와 편안함, 그리고 즐거움이 필요합니다. 욕심을 절제하면 나오게 되는 것들인데, 설명하려면 잔소리가 길어지니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너바스 이실장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