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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Feb 09. 2024

오랜만에 다같이 놀러가지 않을래?

홀보쉬 (Holbox) 는 어때?

이번 여행의 발단은 한 통의 문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언니, 5월 초순 정도에 시간 있나요? 나와 자주 여행을 다니는 A로서부터 온 반가운 연락이었다. 아마 괜찮을 것 같은데, 왜? B 언니와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희 친구들 오랜만에 모여서 여행이라도 가면 좋을 것 같아서요. 내가 할 대답이야 뻔했다. 너무 좋지!


    A와 B 언니는 일전에 푸에르토리코 여행을 같이 갔던 멤버다. 그 당시의 기억이 너무나도 좋았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애초에 다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오랜만에 놀러가자고 하는 일이라 애초에 거절하지 않았을 거다. 같은 동네에서 살던 우리는 어쩌다 보니 직장 이슈로, 가족 이슈로, 이제는 많이들 살던 동네를 떠나게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여행을 계획하지 않으면 모두를 볼 일은 근시일내에는 없을 것 같았다. 여행을 가자는 말에 OK를 하고 나서 초대된 단톡방에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리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동안 잘 살았냐며 한바탕 안부를 묻고 난 후, 그래서 우리는 어디를 갈까? 하고 물어온 질문에 내가 꽤 강경하게 홀보쉬 (Holbox) 는 어떨 것 같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홀보쉬는 유카탄 반도의 북쪽 해안에 위치한 멕시코 킨타나로오 주의 섬이다. 칸쿤에서 북쪽으로 2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하면 나오는 치킬라 라는 항구에서 배를 30분 가량 타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는 이 작은 섬은, 꽤나 오랜 시간동안 투어리스트들의 레이더망을 곧잘 피해다녔던 숨은 섬이었다. 그랬던 홀보쉬가 최근에 와서는 아이러니한 이유로 유명세를 스멀스멀 얻고 있다. 이유인 즉슨, 툴룸이 이제는 너무 개발되어서 더이상 이전 같지가 않은데 홀보쉬라는 곳이 꽤 예전 툴룸 같은 느낌이 나니 한번 가 볼 만 하다는 것이다.


    참 사람들 마음이란게 정말 신기하다.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 우르르 몰려가 잔뜩 호텔을 짓고, 관광시설을 만들고,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하면 이제는 더이상 예전 같지 않다며 또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이 행동 양식은 도대체 뭘까? 정작 나조차도 같은 이유로 홀보쉬에 궁금증이 생겼지만서도 말이다. 어찌 보자면 그저 정복을 위한 정복이 목적이었던 13세기의 몽골의 정복 전쟁 같기도 하다. 차이점으로는 13세기의 몽골은 몽골 제국을 만들었지만, 21세기의 여행객들은 자본주의의 논리를 퍼트리며 자연을 파괴하고 지역 물가를 망친다는 점이겠다 (물론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 등 좋은 결과물도 있으니 나쁜 일이라고만 볼 수는 없겠다).


    그래서, 과연 홀보쉬의 무엇이 예전의 툴룸을 생각나게 한다는 걸까? 내가 이해한 바로는 대략 이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우면 둘째가라인 해변가와 바다를 볼 수 있는 이 섬에는, 어느 정도의 관광 및 생활 인프라가 깔려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고, 본격적인 자본이 들어오기 전이라 멕시코 로컬의 문화와 감성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듯 했다.


    또 다른 유니크한 특징으로는, 홀보쉬 섬의 거리에는 자동차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로 골프 카트와 자전거를 이용해서 이동한다. 정책적으로 자동차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홀보쉬의 자연은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 홀보쉬에게 가장 많이 끌렸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작은 섬이라니. 일차적으로는, 세상사 모르는 일이니 언젠가 이 섬에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에 한번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곧이어 자동차가 없음으로 시사되는 이 섬의 불편함에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사서 고생을 할 필요는 없지만, 현대인들의 삶이란 어떤 의미에서 과하게 편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편리한 것은 너무 좋다. 나 역시 마룻바닥을 걸레질 하는 대신 로봇 청소기를 쓰고, 빨래 건조대 대신에 빨래 건조기를 쓰고, 설거지를 하는 대신 식기 세척기를 쓰는 삶의 편리함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하지만 동시에, 편리하게만 진행되는 삶의 어떤 부분은 또한 쉽게 잊혀지고 감동 없이 지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의 경우, 아무런 고생도 하지 않고 겪는 경험은 대략적으로 그렇게 많은 감동을 주지 못하고 기억 밖으로 스리슬쩍 사라지고는 했다. 고생 없이 편리하게만 얻은 것을 성취라고 인식하기에는 무리가 있듯이, 그 당시의 나는 편리하기만 한 여행을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 지루한 시기를 겪고 있었던지, 고생을 하더라도 쉽게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물론, 이것은 치기어렸던 그 순간의 경험이고, 몇개월 지나지 않은 지금은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요즘의 나는 그저 편하기만 한, 누군가가 나에게 전부 떠먹여 주는 여행을 하고 싶다. 이것은 아마 요즘의 내가 지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드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의 나는 배가 불렀다.


    배가 불렀던 나는, 곧이어 꽤나 열정적으로 여행 멤버들을 설득했다. 홀보쉬라는 섬이 있는데 여기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고 자연이 너무 멋지다더라! 거기 가면 요런 식당도 있고, 저런 술집도 있고, 이런 액티비티도 있대! 착한 나의 친구들은 진심으로 동조해 주었고, 우리의 여행 장소는 별 반발 없이 홀보쉬로 정해지게 되었다. 초기 단톡방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12명 정도로, 적당한 숙소를 찾는 것만 신경쓰면 될 것 같았다. 마침 에어비엔비에 렌탈이 가능한 대형 빌라가 몇 개 보였으므로, 숙박 장소를 찾는 것 역시 꽤 수월했다.


    하지만, 12명이나 되는 2030의 스케쥴이 이렇게나 다 잘 마법같이 맞아 떨어질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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