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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Feb 09. 2024

출발 이틀 전, 임신이라고요...?

이때는 진짜 정말 다 취소해야 하나 싶었다

    처음에 못 갈 것 같다고 소식을 알려온 사람들은 한국 귀가파였다. 그 시점의 우리는 모두 다 미국을 주 거주지로 삼고 있었는데, 다들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 정기적으로 고향에 돌아가 고향 밥을 먹어야 했다. 원래는 6-7월경에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가족끼리 일정을 맞추다 보니 아무래도 5월 초순에는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며, 그렇게 두 명이 빠졌다.


    이렇게 두 명이 빠지고 나니, 또 두 명이 빠졌다. 한 명은 일이 급작스럽게 바빠져서 여유가 나지 않을 것 같다고 했고, 다른 한 명은 친구가 일이 바쁘다니 자기도 그냥 일이나 해야겠다며 빠지겠다고 했다. 처음에 12명이 있었던 단톡방에는 이렇게 8명이 남았다. 커플이 3쌍에 나와 A가 껴서 8명이었다.


    그러던 중, 한 커플이 아주 크게 싸웠다. 어찌어찌 화해를 하기는 했지만, 관계가 수복이 제대로 되지는 않았다며 여자 쪽이 말을 전해왔다. 오랫동안 쌓아왔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진 거라, 이런 마음 상태로 다 같이 여행을 가면 괜히 분위기만 망칠 것 같다고 했다. 당연히 이해한다고 말을 전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지 며칠 후, 또 다른 커플이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유인즉슨, 남자 쪽이 취업비자 추첨에 뽑혔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한국에서 비자를 갱신하기 전까지는 미국 외 지역에 가면 안 된다고 했다. 다들 축하를 전했지만 그렇게 이 커플도 여행 계획에서 빠졌다.


    이 시점에서, 여행 멤버들은 4명이 남았다. 미혼 싱글 여성인 나와 A, 그리고 B언니의 남편인 C 오빠다.


    우선 A, B, 그리고 나 셋이서 단톡방을 팠다. 어떻게 하는 게 제일 좋을까요? 누군가가 물꼬를 텄다. 여자 세명에 남자 한 명인데... 이게 괜찮을까요? C 오빠와는 모두 막역한 사이였지만, 성비가 너무 애매한 건 확연한 사실이었다. 앗사리 여자 인원수가 더 많은 것도 아니고, 애매하게 많은 것이 그림이 안 좋아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이 여행을 진행하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들 무렵에, B 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사실 우리는 전혀 상관없고, 지금 일이 너무 바쁜데 스트레스 해소를 아예 못 하고 있어서 이 여행을 꼭 가고 싶기는 해. 취소하지 말고 진행하자. 그런데 남편 혼자 남자라서, 혹시 너희가 괜찮으면 너희 지인들 중에 같이 다녀올 사람들을 초대해 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나와 A의 지인 찾기가 시작되었다.


    결과적으로 내 쪽에서 DE를 초대하게 되었다. D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으로, A와도 이전에 안면이 있었다. 그리고 B언니와 C 오빠랑도 성격이 잘 맞을 것 같았다. E는 동갑 친구인데, 우리 동네에서 변호사 일을 하고 있었고, 마침 오피스로 출근을 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면서 시간만 채우면 되는 상황이었어서, 일감을 갖고 조인하기로 했다. 그렇게 C 오빠를 위한 나의 인선이 준비되었다.


    이제 다 되었다.라고 생각할 즈음... A가 못 갈 것 같다고 말을 전했다! 이유인즉슨, 영주권을 신청하는 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일 때 미국 외로 잠깐 나갔다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주 곤욕을 치른 A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미국 입국심사대에서 거의 하루동안 취조당하면서 있었다며, 아마 몸을 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A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자 B언니가 A도 빠지는데 우리가 이 여행을 진행하는 게 맞을까? 하고 말을 던졌다. 문제라면... 사실 나는 D와 E와는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C 오빠가 어색할까 봐 사람을 구한 게 더 컸기 때문에, 한껏 가자고 꼬셔놓고 지금 와서 여행이 캔슬되었다고 말하게 되면 D와 E와 나 사이의 얄팍한 우정이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을 것만 같았다. 상황을 설명하니 B 언니도 그렇다면 가는 게 맞겠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D가 여자친구를 초대하게 되어서 얼추 성비가 다시 맞게 되었다는 점이겠다.


    그렇게 여행 인원이 확정되었다.


1. 부부인 B와 C

2. 사귄 지 일주일 된 D와 그의 여자친구

3. 나와 E


    이렇게 말이다. 처음 여행을 계획했던 그룹에서 남은 것은 나와 B, C 오빠뿐인데, 12명에서 시작했던 것을 생각하면 원본은 고작 25% 남은 것이다. 75%의 로스라니, 보통은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긴 하다.


    참고로 D와 E는 서로 아는 사이지만, 둘 다 B와 C와는 안면이 없었다. 게다가 D의 여자친구는 이 여행에서 아는 사람이 D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들 둥글둥글한 사람인 데다가, 놀러 가는 것이니 이왕 가게 된 것 재밌게 가서 즐기자며 다짐하였다. 드디어 이제 다 된 것이다! 인원이 다 픽스되었으니, 이제야말로 가서 재밌게 놀고, 쉬고, 먹고!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출국일 이틀 전, B 언니가 전화를 걸어서 알려주었다. 임신했다고 말이다. 


    B언니와 C오빠가 아기를 원했던 것은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당연히 너무 축하할 일이었다. 언니 너무 축하해!!! 이제 몇 개월이야? 하고 묻는 내게 언니가 알려주었다. 개월 단위 수가 아니라고 말이다. 응? 하고 되묻자 답변이 되돌아왔다. 이제 임신 3주 차야. 순간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안정기가 아닌데, 비행기를 타도 괜찮나? 하는 생각과, 오히려 아주 초기라 괜찮을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언니에게 극초기라 위험할 수도 있는데, 여행을 가도 괜찮겠냐고 묻자, 그래서 얼마 전에 캔슬하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가기로 결정을 했으니 가서 좋은 시간을 보낼 것인데, 술은 못 마시게 될 테니까 이해해 달라고 따로 연락을 넣어준 것이다. 오히려 더 불안해하는 나를 언니가 달래주었다. 그리고 이틀 뒤, 우리는 다 같이 칸쿤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출국 날, 같이 가게 되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최종 인원은 몇 명이냐고 물었던 그 친구들도 지금은 알고 있다. 사실 6명이 아니라 7명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다행히도 여행을 잘 마친 B언니와 C 오빠는 얼마 전 무사히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였다. 예쁜 공주님이다. 아직 몸을 뒤집지도 못할 정도로 작은 이 생명의 사진을 전해받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 구석이 참 몽글몽글해진다. 이 공주님은 자기가 지금보다 더 작았을 무렵에, 엄마와 아빠와, 다른 이모 삼촌들과 꽤나 다이나믹한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을 알까? 그럴 리가. 전혀 알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 내가 남기는 기록이 오래 남아준다면, 이걸 보고 나중에 신기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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