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두지 않기

by 삶과 생각

(저의 이름을 홍길동이라고 칭하겠습니다.)

언젠가 친구가 나에게 그랬다.

"너를 '홍길동'이니까, 너는 '홍길동'이니까 라는 말에 너를 가두기 싫어"

"그게 무슨말이야?"

"홍길동이니까 잘하겠지, 홍길동이니까 못하는게 없잖아?, 홍길동이니까 잘 이겨낼거야 등의

이런말을 안하겠다는거야"


나는 충격을 받았었다.

지금까지 저런 말들은 칭찬으로 들렸고, 기분좋은 말일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왜? 좋은 말이잖아? 그 친구를 알고, 알아주고, 믿는다는거 아니야?"

"그 의미도 맞지만 다른 의미도 있잖아"

"무슨 의미?"

"저런 말을 들은 사람은 얼마나 부담되겠어. 그렇지 않을까? 난 홍길동이니까 잘해야하는구나.

난 홍길동이니까 힘들어하면 안되고 잘 이겨내야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와.. 그러네.. 나도 그랬네.. 나도 그렇게 살고 있네..'

감탄을 하는게 아마 친구에게 티 났을 것이다.


정말 생각도 못했다. 나도 평소에 그런말을 자주 들었다. 친구의 친구도 그렇게 말한적이 있었단다.

"걔 홍길동이잖아. 잘 살거고 착하게 평온하게 살겠지!"

나는 뿌듯한 감정이 들기도 했고, '잘 살았구나, 잘 살아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무언의 부담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 나는 해내야해, 주변에서 보는 시선이 있잖아. 나한테 거는 기대가 있잖아, 무너지면 안돼'

그랬다. 나는 그렇게 부담속의 삶을 살아왔다.

친구가 저 말을 해주기 전까지 그것을 알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도 남들한테 저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넌 누구니까 잘해낼거야, 넌 누구니까 파이팅이야" 이런 말들을 말이다.


그 말이 어떤 부담으로 다가올지, 그 말이 주는 힘도 있지만 다른 의미도 있다는 걸 내가 많이 느꼈으니까.

그래서 친구가 잘 했다면 "역시 홍길동이네"가 아니라 "고생했다! 멋지다! 나중에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해줘! 행복한 하루 보내고!" 식의 이야기를 건넨다.

혹여나 친구가 잘 안됐다면 "홍길동이니까 다음엔 더 잘할거야"가 아니라 "고생많았어. 오늘은 쉬자. 아무 생각하지말고. 내일 다시 생각해보자."식의 이야기를 건넨다.

그 친구가 나에게 준 깨달음은 평생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