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올해들어 지인의 부고가 많았다. (슬슬 나이를 먹는다는 것인가..)
모든 부고를 챙겨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가야 할 부고에는 꼭 참석을 했다.
장례식장에 갈때마다 마음 한켠이 움찔거리기도, 그 움찔거림은 곧 아픔으로 다가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잊혀지지 않는 아픔때문일까.
장례식장에서 상주를 볼때마다 참 깊은 동질감이 느껴지며, 그것이 어떤 아픔인지 알기때문에 크게 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그 어떤 말로도 그 아픔은 사그라들지 않고, 장례를 치르고 나면 그 어떤 말도 크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식사는 잘 하셨는지, 잠은 좀 주무셨는지 등. 지금 당장의 상주 상태만 묻고는 한다. 이것 외에는 상주를 위한 다른 어떤 말도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말만이 아닌, 또 다르게 감사함을 느끼는 것은 '곁'이다.
1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3일 내내 장례식장을 지켜준 친구들이 있었다.
잊지못할, 지금도 나에게 있어서 가장 든든한, 언제나 남들에게 내 친구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두 명.
대학생이었던 친구들은 수업도 빼면서까지 곁을 지켜줬다.
크게 한 일은 없었다. 도우미 아주머니들이 계셨고, 가족과 친지들이 있었기에.
일손이 부족할 때 음식을 날라줬고, 청소가 필요할 때 간단한 청소를 해줬다.
그렇게 3일을 나와 함께 그 장례식장에 있었다.
그때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경황과 정신이 없어서 느끼지 못했다. 그게 얼마나 큰지. 비교할 수 없는 크기인지.
몇년이 흘러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또 조문객의 입장이 되어보니. 그게 참 얼마나 대단한건지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감사하고 어떠한 형태로도 다 갚지는 못하겠지만 노력중이다.
훗날 이 친구들의 부고때, 내가 그렇게 똑같이 해주는 것 말고는 갚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야 할 부고는 그 지인에게는 참 큰 슬픔일 것이다. 아니, 어떠한 분이든 내가 아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슬픔이다.
그 슬픔에서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얼마나 큰 기쁨이고, 행복이고, 힘이 되는지.
그 감사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두 친구는 똑같은 말을 했다.
"해줄 수 있는게 이것밖에 없어서"라고, "곁에 있어주는 것밖에 없어서"라고.
처음에 말했듯이 상주에게는 어떤 말도 들리지도, 기억에남지도, 힘이되지도 않는다. (겪어보면 알 것이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는동안 곁에 있어주고, 밥을 먹을때 같이 먹어주고 밀려오는 슬픔을 위로해주고 같이 울어주는.
참 단순하고도 쉬운 이 행동들이 상주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아마 두 친구도 모를 것이다.
대학생때라서 간단하게 수업만 빼면 계속 같이 있어줄 수 있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다들 직장을 다니고, 각자의 삶이라는게 있다. 장례 내내 하루종일은 아니지만. 근무시간 이외에는 새벽까지도 같이 있어주려고 한다.
조문객이 슬슬 오지 않는 22시, 23시가 넘어가는 순간에 고인의 영정사진을 보며 가장 슬퍼 할 상주를 위해.
장례내내, 그 후에도 어떤 순간에도 위로가 필요하지만 그래도 많은 조문객들이 오는 시간이 아닌
조문객들이 없는, 슬픔이 극에 달하는 그 순간에 같이 있어주고, 그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되는.
내가 그렇게해야 마땅한 사람들에게는.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꼭 그렇게 해줄 것이다.
어떤 슬픔인지 알기때문에. 어떤게 힘이 되는지 겪어봤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게 그것 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