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첫 발 내딛기

by 지한

몇 해 전,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조금씩 모은 돈을 싹 긁어모아서 드라마 아카데미에 등록하겠다며 엄마 앞에서 나름 당당하게 말했다. 그때 목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 나온 잠옷바지를 입은 건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몇 달동안 방구석 폐인으로 지내다가 갑자기 뭔갈 하겠다며 오밤중에 안방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보고 엄마는 좀 반가워했고, 나는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이제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진짜 작가라도 된 것처럼 하루아침에 갑자기 씩씩해져버린 나에게 엄마는 아카데미 등록비를 내주셨다. 뭐라도 엄마가 도와줄 수 있을 때 도움을 받으라고, 그리고 이왕 하는 거 진짜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6개월은 엄마의 도움으로, 6개월은 계약직으로 일하며 모은 돈으로 아카데미를 다니며 기초반 수업을 듣고 습작 몇 편과 단편 시나리오를 썼다. 중간중간에 과제를 제출하면서 첨삭을 받기도 했다. 글을 쓰는 건 재밌었지만, 도저히 나의 어설픔과 서투름, 아마추어스럽지도 못한 필력은 진짜 견뎌줄 수가 없었다. 본인들이 쓴 글이 제일 재밌다는 다른 수강생들과는 다르게, 나는 갈수록 늘지 않는 내 필력에 작가로서 소질이 없는 것 같다며 열정을 잃어갔고, 결국 종강을 몇 번 안남긴 시점에서 과제도 제출하지 않고 수업에도 나가지 않았다. 엉성한 글만 찍어낼 바에는 아예 아무것도 쓰지 않음으로써 나의 어설픔을 마주하지 않겠다는 엉뚱한 고집이 생겨버렸다. 그렇게 작가가 되고싶다던 나의 결심과 시도는 아무런 결과도, 성과도 내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꿈을 좇는다는 건 아름다운 일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과정도 무조건 행복한 일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었고, 힘든 거야 잠시 잠깐일거라고 믿었다. 글쓰기는 내가 사랑하는 일인만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고, 쓰면 쓰는만큼 실력이 팍팍 느는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현실은 쓰는만큼 까였고 까인만큼 성장하면 좋았으련만, 성장은커녕 퇴보하는 느낌이 드는 걸 이겨내지 못했따. 다른 수강생들의 성장을 지켜만 보면서 나에게 글쓰기는 취미 이상이 될 수 없을 거라고 단정지었고, 해외출장을 핑계로 두 달치 수업에 나가지 않았다.



살면서 큰 실패나 역경을 이겨낸 드라마틱한 경험이 없어서 그랬을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서도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좀 충격이었던 것 같다. 다시 한번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했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이제는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를 바꿔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우울했고, 앞으로는 어떤 일도 새로 시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스물 여섯에서 일곱으로 넘어갈 때 작가가 되겠다 먹었던 마음은, 스물일곱에서 여덟으로 넘어갈 때는 난 이제 아무것도 새로 시작할 수 없고 어떤 글도 쓸 수 없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20대 후반은 안정적인 직장과 마인드로 곧 다가올 서른을 차분하게 준비하는 그런 나이었기 때문에, 새로 무언가를 시작하고 시도한다는 것이 그 뒤로는 겁나기만 했다.



그리고 스물 여덟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새로운 직장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기 시작했고, 이십대 후반의 첫 발을 내딛은 그 직장을 내 천직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그 생각은 6개월만에 뒤집혀서 스스로 직장을 관두고 나왔고, 스물아홉 살에는 직무를 바꿔서 완전히 다른 회사에서 근무를 해보기도 했었다.

서른이 된 지금은 20대 후반에 취미로도 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고, 잠시 직장이 없는 기간에도 하늘은 두 쪽으로 쪼개지지 않고 내 인생이 완전히 폭삭 주저 앉지는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지금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에 나의 30대 이후에 새롭게 시작하는 일은 없을 거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포기해버린 일은 얼마나 많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일은 또 얼마나 많을까.

어리기만 한 줄 알았던 20대에 했던 생각이 어리석기도 했단 걸,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냈던 일상은 내가 매일 첫발을 내디뎌야 시작하는 거란 걸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매일 내게 새롭게 주어지는 기회들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날들을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보도록 해야겠다.



그러니까 결론은, 남은 2022년도 화이팅.



이전 07화프리미어리그 축구를 보는 50대 중반의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