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50대 중년 여성이다. 그리고 그녀는 중년 여성에 관한 스테레오타입과는 좀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는 단 한 편도 본 적이 없으며, 여전히 조용필과 심수봉, 백지영을 좋아하고, 그들보다는 본인의 딸이 한참 키를 낮춰서 부르는 심수봉 노래를 듣다가 어느 소절쯤에 합류해서 부르는 걸 더 좋아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일을 쉬는 날엔 야구도 간간히 보지만 하루종일 초록색 필드와 파란 하늘, 하얀 공만이 보이는 골프 채널을 틀어놓고 선수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걸 좋아한다. 누가 이기든 멋진 플레이는 응원하고 아쉬운 플레이엔 함께 아쉬워한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아는 50대 여자 중에 제일 호불호가 명확하고 하얀 공을 사용하는 스포츠를 좋아하며 명작 드라마를 가려내는 눈썰미를 가진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몇 가지 특징만 적어보니 나의 엄마는 좀 귀엽고 독특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아빠는 아기자기한 가족 드라마나 로맨스물도 가끔 즐겨 보고, 다문화 가족의 고부갈등을 다룬 프로도 자주 보지만, 주로 자연인이 산과 들에서 나는 걸 끓여서 한끼 든든하게 먹는 프로를 좋아한다. 당연히 아빠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엄마도 아빠를 이해하거나 맞춰줄 생각은 없어보인다. 그래도 두 분은 다툼없이 한 공간에서 한 쪽은 유튜브를, 한쪽은 스마트폰을 번갈아가며 보면서 가정의 평화유지에 기여하신다.
엄마는 그녀의 아들이 거실에 등판하면 자연스럽게 해외 축구 채널로 바꿔주신다. 아빠는 그럴 때마다 조금은 질투가 나는 표정도 지으시지만 대부분은 아들에게 한마디라도 붙여보려고 싱겁게 한마디 하신다. 아들은 어떤 말에도 으응, 말고는 별 반응이 없다.
아들을 보면 자동으로 미소가 나오는 엄마는 축구 채널의 음량을 높이며 이 경기 보러 거실에 나온 거냐며 말을 걸고, 거실 바닥에 앉는 아들래미의 어깨며 목을 주물러주며 시원하냐고도 물어본다. 말수가 적은 아드님께선 어느 날은 시원하다고 했다가, 어느 날은 제발 이런 것 좀 하지마라며 앙칼진 대답을 하기도 한다.
어느 날은 엄마와 함께 혼자 잘 사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프로를 한참 재미나게 보고 있었는데, 그 순간 동생이 방에서 거실로 나왔다. 역시 채널은 하루종일 프리미어리그 축구 중계를 하는 채널로 돌아갔고 동생은 TV에만 시선을 둔 채 거실 바닥에 앉았다. 역시나 동생의 목과 어깨를 주무르던 엄마가 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저 선수가 저번 경기에서 몇 골을 넣은 선수네, 쟤는 무슨 나라에서 온 애라며, 등등 손흥민 김민재 말고도 엄마가 아는 해외 축구 선수가 제법 늘어있었다. 어느새 엄마는 나는 관심조차도 없어서 모르는 축구선수 이름을 줄줄 외며 남동생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동생도 엄마 얘기를 가만히 듣고있기도 하다가 맞장구도 치고 콧방귀를 뀌며 반박도 하면서 엄마와 축구 얘기를 자연스럽게 이어나가고 있었다. 축구 경기의 후반전이 끝나면서 엄마와 동생의 얘기도 끝이 났고, 동생이 떠난 거실에서 엄마는 말없이 과일 껍질과 빈 접시를 치웠다. 그리곤 이미 경기가 끝나버린 골프 채널에서 지나간 경기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고 선수들의 플레이에 즐거워하셨다. 물론 동생과 축구 얘기를 나눌때보다 조금 더 즐거워 보였다.
일주일 중에 일을 쉬는 날은 단 하루, 골프와 야구 채널을 8대2 비율로 보는 취미를 가진 그녀가
서너시간 정도 저녁에 TV를 보는 볼 수 있는 시간에
아들에게 채널을 양보하고 축구 선수 이름과 팀별 전적을 더듬더듬 외우려면 아들이 보는 경기를 함께 볼 때 얼마나 집중해서 본 걸까. 인터넷 뉴스로 골프 소식을 보다가 틈틈이 축구 소식을 찾아봤는지도 모르겠다.
무뚝뚝한 아들의 목과 어깨를 주물러주면서 얘기를 나눠보려고 하는 것, 취향을 맞춰가려고 자연스럽게 노력하는 것, 난 이런 걸 사랑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