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느낌은 나만 아는 건가, 약속도 없고 해야하는 일도 없는데 세상 만사가 죽을만큼 귀찮다는 기분.
보통은 어디론가 출근해서나 출근하는 길에 느끼는 이 감정을 집에서도 느끼는 때가 생겼다. 백수 주제에 니가 할 일이 뭐가 있어, 하면서 스스로를 자학하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은 세상에 쓸모없는 처지라는 게 너무 빡쳐서 악을 쓰며 울기도 했다.
이건 분명 마음 어느 한 구석이 불편해서 떠오르는 생각일 거라며 나는 내가 편안하거나 기분이 좋았던 장소를 하루에 한 두 군데씩 찾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대형서점이었고 어느 날은 예전에 살았던 동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중학교였고, 비오는 날 대낮에 바닷가를 찾아간 적도 있었다. 매일 눈을 뜨자마자 집 밖에 나갈 궁리부터 하고 목적지도 없는 외출을 하면서 나는 내 마음이 편할 수 있는 곳을 굳이굳이 불편하게 한 두 시간씩 걸어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찾아다녔다.
그렇게 한 두 달 정도를 오전 오후 내내 방랑하면서 내린 결론은, 나는 그나마 서점에 있을 때 이것저것 들춰보며 불안함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굳이 서점이 아니더라도 책이나 신문 같은 읽을 거리가 있으면 사람이 많은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한 시간 내외로 걸어서 갈 수 있는 대형 서점과 카페 몇 군데를 메모해두었다. 내가 안전지대라고 생각하는 곳들을 몇 군데 확보하고 나서야, 불편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안전지대 내에서만 빙빙 돌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누구나 다 이 정도는 죽고싶어 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대형 서점으로 향하던 길에서 약간의 허탈함을 느끼고 몇 달 간의 수고로움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원효대사 해골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는 해골물 근처 어딘가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불안함, 스트레스라고 불리는 것들은 내가 감수해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다시 나의 집을 지키는 어엿한 백수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의 깨달음을 일기장에 쓰고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해두었다.
- 죽고싶단 생각은 남들도 한다. 다만, 도움이 필요하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꼭 받을 것.
안타깝게도 나는 깨달음을 너무 빨리, 자주 까먹는다. 며칠 전에도 또 눈을 뜨자마자 뭔가 우울하고 불편한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집 근처 카페 오픈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어느 카페에서 대충 무얼 시켜놓고 무얼 해야 이 불안함을 잠잠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일기장을 펼치고 포스트잇으로 마크해 놓은 부분을 다시 몇 번 읽었다. 죽고싶단 생각은 남들도 한다.
심술궂게도 나보다 훨씬 잘 살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서 이걸 확인해보고 싶었다. 한창 근무시간일 시간에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어라, 근데 간만에 본 친구의 프사는 어느새 새로 생긴 남자친구와 근사한 곳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으로 바뀌어 있었고 배경 사진은 명품을 몸에 두른 채 활짝 웃고 있는 사진으로 바뀌어 있어서 목늘어난 반팔과 고무줄 바지를 입고 있는 내가 좀 기가 죽었다.
'OO야 어찌 사니 ㅋㅋㅋ'라고 보낸 짧은 카톡을 친구는 1초만에 읽고 15시간만에 답장을 줬다.
읽자마자 답장을 하려고 했는데 주말 사이에 일이 터져서 해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야근까지 했다면서, '이런 미친 죽고싶당 ㅠㅠ ㅋㅋㅋㅋ'이라는 답장이 왔다.
친구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지는 않지만, 나보다 훨씬 잘난 누군가도 살기 싫을 때가 있기 마련이구나 싶었다. 그치만 하나도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사실 난 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갑갑하다며 어리광을 좀 부릴 참이었는데, 나도 언젠가 직장을 다니게 된다면 딱 저만큼 미치고 죽고싶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루종일 참아왔던 푸념들이 쏙 들어가버렸다. 우리는 언젠간 만나자며 기약 없는 술약속을 잡았고 16시간 동안 5마디의 카톡과 6개의 이모티콘으로 대화를 마쳤다.
며칠 간의 우울이 잠잠해지고 죽고싶다는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을 때, 안전지대 중의 한 곳이었던 대형 서점에 들렀다.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언젠가는 책으로 내야지라고 생각만 했던 제목의 책이 토씨 하나만 다른 채 서점에 나와있었고, 내용도 보잘 것 없는 내 글보다 훨씬 더 재미나고 알차기까지 했다.
비슷한 제목으로라도 책을 먼저 내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살면서 이런 기적같은 일이 한번쯤 일어날 수도 있고, 어쩌면 진짜로 내가 낸 책이 서점에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 오늘같은 날은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떻게든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