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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Dec 06. 2022

소음 속 편안함

나는 어릴 적부터 조용한 곳에서 하루 종일 한 자리에만 앉아서 책을 읽거나 공상을 하거나 글을 쓰는 걸 좋아했다. 학교에서 본 수행평가에서 아쉽게 실수로 하나 틀려버린 걸로 엄마한테 뒤지게 혼났던 날 가출을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부터 오늘 저녁 메뉴가 돈까스였으면 좋겠다는 시시콜콜한 생각까지, 나의 뇌는 쉬지 않고 하루종일 풀가동 상태였다. 반면 내 동생은 가만히 있으면 죽는 병에 걸린 활발한 어린이였다. 여느 남자애들처럼 새로 산 운동화가 찢어질 때까지 흙바닥에서 축구를 하는 걸 좋아했고, 하루 종일 좋아하는 TV 채널을 틀어놓고 광고에서 나오는 내래이션이나 CM송을 따라하는 날도 있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뭔갈 해야만 하는 동생이 너무 신기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좀 귀찮고 시끄러운 녀석이라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생 시절, 겨울방학 때 엄마가 일을 하러 가면 나는 항상 동생과 함께 점심을 챙겨먹고, 설거지를 하고, 학원 시간에 맞춰 내보냈다. 한 살 차이나는 동생이었지만 나는 엄마 흉내를 내면서 숙제해라, 집에서 시끄럽게 하지 마라, 학원 마치면 곧장 집에 와야한다는 잔소리를 쏟아냈고 동생은 사춘기가 온 누나의 히스테리를 장난스럽게 받아내며 나를 약 올릴 때도 있었고 알겠다며 버럭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 연년생 남매는 각자 맡은 첫째와 막내의 포지션을 지켜가며 자랐다.     

예체능을 진로로 선택한 동생은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께 학교 다니는 시간이 아깝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당시 당돌한 그의 나이는 10살. 처음에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넘겼던 부모님도 동생이 자기 분야에서 점점 두각을 나타내고 대회마다 상을 받아오는 걸 보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지셨다. 부모님의 간곡한 설득과 권유로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동생은 타지로 가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진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소음과 멀어진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더 이상 동생의 점심과 저녁, 숙제를 챙길 필요도 없어졌고 집에서는 TV가 꺼져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렇게 나는 약간의 소음과 해야 할 일의 일부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집에서 고요하게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 시간동안 마냥 마음이 편했던 것만은 아니다. 일상에서 늘 듣던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일상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냉동 볶음밥을 데워서 그릇에 아무렇게나 담아 케찹을 뿌려 주면 케찹만 먹는 동생에게 밥도 좀 먹으라며 잔소리를 하던 나와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오늘 있었던 일을 종알거리거나 TV채널에 집중하며 밥을 먹는 동생, 시간이 되면 학원 가방을 챙겨 들고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며 밖으로 뛰어나가던 동생과 제발 좀 걸어다니라며 핀잔을 주는 나의 모습이 사라진 집은 적막 그 자체였다. 집에서 느껴지는 적막은 추위가 되어 이따끔씩 마음을 파고들었고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은 저릿함이 되어서 사춘기 감성을 자극하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철이 들어서 동생에게 겁나게 잘해주고 살가운 누나가 된 건 아니지만 종종 마주칠 때면 최선을 다해서 친절하게 이야기한다. “어이, 밥 먹었어?” 



요즘도 혼자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명절이며 주말에 집에 사람이 많은 게 좋다던 외할머니의 말씀이 자주 생각난다. 맛있는 저녁을 한상 차려주면 이것저것 잘 먹고 거실에 모여 서로 아무 얘기나 하며 떠들어도 행복한 시간. 그런 식구들이 주말 저녁에 하나 둘 평일의 생업을 위해 떠나갈 때면 외할머니는 차 앞까지 나와서 손을 잡아주셨다. 다음에 또, 자주 오라고.


바깥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의 하굣길 말소리가 들린다. 반은 사람 이름이고 반은 욕인 그것을 들으며 지금의 이 적막을 좀 더 깨어줄 친구의 카톡이 간절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식구들이 돌아오기 전에 새 밥을 하고 오늘 아침에 널어 둔 빨래가 얼만큼 말랐는지 확인을 해야겠다. 각자의 소음을 내며 밥을 먹고 씻고 얘기를 하는 그들을 조금 더 따스하게 맞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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