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 없이도 잘 해요
첫 직장에 갈 때마다 겪는 사회 초년생의 고충이라면, 전공과 실무의 갭이 클 때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실무와 꽤 관련성 높은 자격증이나 스펙을 갖췄다고 해도 인수인계를 해주겠다며 온 사회생활 n년차의 사수가, 나는 들어도 뭔 말인지도 모를 업무를 아무렇지도 않게 슥슥 해내는 걸 보며 전문가다운 포스에 놀라곤 한다.
분명 어제 배운 건데, 점심 먹기 전에 배운 건데 돌아서면 기억이 안난다. 휴대폰도 공장 초기화를 하기 전에 몇 번을 물어보고 하는데, 내 머리는 풀가동과 동시에 초기화를 실행하도록 하는 리셋 버튼이 달려있나보다.
걷는 법도, 밥을 떠서 입에 가져가는 것도, 글을 읽고 덧셈뺄셈을 하는 것도 모두 배워서 가능한 일이었을텐데, 이젠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게 덜컥 겁부터 난다. 못하면 어쩌지, 주변에 피해를 주면 어쩌지, 난 영영 적응하지 못할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쉽게 포기하거나, 악에 받쳐서 화내고 짜증내다가 때려쳐버린 일들도 있었다.
이 모든 걸 참아내고 한 직장에 30여 년을 쏟아부은 아빠가 새로워 보이고, 농담을 하면서도 회의시간에 업무 진행 상황을 똑 부러지게 보고하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내 옆자리 과장님이야말로 나에겐 생활의 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