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쌤 만나고 싶어요.”
간만에 아꼬운 아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직 후 영 왕래가 없었는데, 대뜸 사랑스러우면서 무례한 메시지 하나가 성큼 들어왔습니다. 당돌하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싫지 않은 당돌함입니다. 무례함이 옮아 들어온 것인지 저 역시 일전에 잡아놨던 약속을 과감히 미뤘습니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고 당사자에게도 단연 미안했지만, 배알이 없는 건지 설렘이 가득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별도 무례하게 찾아온다는 걸 느낍니다. 언젠간 아이에게 제가 필요 없어지는 때가 오겠죠? 심히 갑작스러울 거고요. 그럼 이제껏 그래왔듯이 아이는 저를 떠나고, 저는 아이를 보내야 할 겁니다. 선생이야 학생이 선생을 필요로 할 때만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저는 벌써부터 무엇이 아쉬운 걸까요. 계속 누군가에게 좋은 선생으로 남고 싶은 걸까요.
날이 추워 따듯해지고 싶습니다. 혼자가 외로워 당신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나에겐 없어 당신이 제게 필요하고, 제가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별의 바탕은 어둠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소리의 바탕은 침묵이고, 삶의 바탕은 죽음이고, 있음의 바탕은 없음입니다. 별은 어둠 속에서야 빛을 내고, 소리는 침묵 위에 있어야 울리고, 삶은 죽음 가까이에서야 조망할 수 있고, 있음은 없음에서야 느끼는 법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대개 일종의 결핍으로 만들어졌을 겁니다. 좋은 것일수록 더욱 그런 성향을 띠죠.
이 아이 저 아이 많은 아이를 만나다 보면 다른 아이들보다 유독 반가운 아이가 있습니다. 방황하는 아이입니다. 이상하게도 신념에 가득 찬 아이보다 방황하는 아이가 더 반갑습니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아이는 분명 그로 인해 좋은 어른이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얘기합니다. 그 결핍을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저 역시 끊임없이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 아니라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좋은 사람이기를 꿈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좋은 사람이 되기를 정진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선생 노릇을 하러 갑니다.
최선을 다해 오늘 좋은 선생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