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

생색(生色): 활기 있는 기색 / 날 생(生), 빛 색(色)

by JACOB


“드드드득.”


오늘도 자동차 밑판을 대차게 긁었습니다. 대체 언제쯤 평면 주차가 능숙해질까요. 애써 아랑곳 않고 갈 길을 가려던 찰나, 걸음이 멎었습니다. 아스팔트 차도와 인도 사이의 턱 그 좁은 틈 사이로 아주 작은 민들레 하나가 당차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습니다. 매연 냄새 흠씬 껴안으면서도 용케 옹골지게 피어났더군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자리에서 아주 뻔뻔히도 봄을 노래하고 있더군요.

어쩌다 이곳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게 되었는지. 그곳의 삶은 정말 안녕한 삶인지. 대체 이 상황이 어떻게 그렇게 해맑을 일인지. 괜히 그 뻔뻔한 민들레를 한참 동안 바라봤습니다.


대학원 시절,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을 참 싫어했습니다. 소위 저는 많이 뿌리지 못하는 농부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진 씨앗도 많이 없었고, 씨앗을 담는 그릇도 그리 크지 않은 농부였습니다. 반면에 함께 살던 친구나, 어울려 지냈던 친구들은 대개 많은 씨앗을 가진 농부였죠. 그래서 그들과 저는 성과에 있어 많은 차이가 났습니다. 역시나 뿌린 대로 거둔다고. 저는 가진 씨앗이 적어 적게 뿌렸고, 적게 뿌리니 당연히 수확도 적었습니다. 그런 제게 달린 평가는 언제나 ‘노력 부족’이었습니다. 이 시대 성과 부족은 자연히 노력 부족으로 해석되었죠. 많은 씨앗을 가졌던 제 친구들을 가진 만큼 많이 뿌렸고, 많이 뿌린 만큼 수확도 많았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언제나 많은 수확과 인정의 박수로 돌아왔죠. 누구는 더 뿌리고 싶지 않겠느냐마는 그건 명확히 제 품 이상의 영역이었습니다. 괜히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 적인 한두 번이 아니었죠.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괜히 억울하게 들렸던 외로운 시절이었습니다.


봄이 되니 너도나도 울긋불긋 앞다투어 색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그중 역시 눈에 들어오는 친구는 좋은 터에 거목으로 자리 잡은 친구와 주변과 다채롭게 어울려 웅장히 봄을 노래하는 친구들이죠. 비해 이 아스팔트 사이에 핀 자그마한 민들레에게서 봄을 들을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주제에 뻔뻔하다 핀잔을 주고 싶지만, 구태여 약한 소리 참아내고 자신의 본분만을 행하는 작은 생명에게 부끄러움만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말합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적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보입니다. 저만의 삶의 활기, 저만의 삶의 색깔, 제가 부르는 봄의 노래, 구태여 말 않은 저의 열심과 진심까지. 생색(生色). 어쩌면 우리 모두 적당한 생색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나름 저마다의 곳에서 버젓이, 혹은 뻔뻔히 ‘살아’ 있으니까요.


황새로 태어나지 못한 뱁새의 울음소리, 생색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