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OB


많이 피곤했을까, 오늘따라 유독 우리 아이의 자는 모습이 신경 쓰인다. 소리 가득 찬 공간이지만 정작 내게 들리는 소리는 없다. 다른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의 시선은 오직 곤히 자고 있는 우리 아이의 얼굴 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다 문뜩 내 입가에 번진 웃음을 보았다. 나 분명 피곤함에 부서져 있었는데, 나 분명 분주함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나 분명 막연함에 움츠려 있었는데, 언제부터 내 얼굴에 웃음이 번졌을까. 왜 내 마음에 온기가 찼을까. 무엇이 내 안에 생명과 사랑을 불러일으켰을까. ‘…. 아, 내게 빛이 새어 들어왔구나.’ ‘아, 내 안에 저 빛이 들어왔구나.’


자그마한 초콜릿을 들이밀며 약소한 응원을 건넸을 때 자다 일어난 아이는 내게 물었다. “이거 왜 주시는 거예요?” “왜 저에게 잘해주세요?” 자면 안 되는 시간에 잤던 것이 괜히 눈치 보이고 불편했던 것일까 아이는 나를 꽤 불편해하며 나의 행동을 의아해했다. “네가 나에게 주는 게 너무 많거든.” 내 대답이 아이의 의아함을 해소해 줬을까. 아니면 더 키우기만 했을까. 내가 건넨 초콜릿이 다음부터는 자면 안 된다는 메시지로만 가지 않기를 그저 소망했다.


누가 자매 아니랄까. 그 아이의 동생도 시시로 내게 묻는다. “왜 제게 잘해주세요?” “제가 뭘 했나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한다 한들, 이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의 질문에 항상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웃으며 대답한다. “네 안에 너무 밝은 빛이 있거든, 그 빛이 자꾸 나를 끌어당겨.” 이 말을 이해한 것인지, 아이는 더 밝은 웃음으로 내게 화답한다. 그리고 그 환한 빛에 나는 또다시 살아난다.


아이를 바라보는 것은 천체망원경을 보는 일이라 했던가. 고독한 우주 속에서도 속없게 반짝이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괜스레 삶에 활기가 돈다. 나는 아이들에게 삶을 빚졌다. 아이들이 나로 사랑할 수 있게 만들고, 아이들이 나를 사람답게 살게 해준다. 저 활기차게 빛나는 생명을 나는 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