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이렇게 조급해?! 너 작년에 한국 들어갔어.”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보스턴 친구에게 나는 혼이 났고, 나는 잠시 혼이 나갔다. 한국에 들어온 지 2~3년은 된 줄 알았는데.. 작년 봄까지 나는 이제 막 캐나다에 적응을 마친 캐나다 워홀러였다.
‘작년 봄까지 내가 캐나다 워홀러였다니..’ ‘한국에 들어온 게 작년 5월이었다니..’
한국에 들어와 대체 어떤 시간을 얼마나 빠르게 보냈던 걸까. 뭘 그렇게 바쁘게 살아왔던 걸까. 뭘 그렇게 분주하게 달려왔던 걸까. 뭘 그렇게 예민하게 지내왔던 걸까. 최근 일기를 펼쳐보니 스스로를 다그치는 불친절한 모습이 곳곳에 만연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시시로 따졌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창피했다. 혹시 나는 무례하게 몰아치는 나 때문에 숨죽여 울진 않았을까. 어디서 묻어온 모습인지 지난날의 집요한 내 모습이 낯설다. 그저 미안하고 미안해 일기 속에 눈물을 띄웠다.
“미안해, 수고 많았어.”
그제야 나로 인해 허덕였던 나는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함께 울었다.
2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영혼이 뒤따라 올 겨를 없이 그저 달렸던 내가 너무 고생 많았다. 그중에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고 되려 다그쳤던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나무의 속도만큼만 자라자” “생명은 원래 생명의 속도에 맞게 자라야 건강한 거야.”라고 공공연히 외쳐댔던 내가, 정작 스스로에게는 단 한번 속삭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미안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법이니까.”
어쩌면 정말 많은 것을 놓치면서 다시 얻게 된 나. 떳떳하게 2025년을 보낼 순 없겠지만,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인사할 수 있게 됐다.
“고생 많았다. 2025년.”
“부디 잘 부탁한다. 2026년.”
“친절하자. 202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