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상
나의 공황장애는 7월 1일 시작됐다.
내가 정확히 그날을 기억하는 건, 아내의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에 방문한 날과 같기 때문이다.
안 좋은 소식이 휴대폰으로 날아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머리가 하얘지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눈치 빠른 아내가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왜 거짓말을 했을까? 천성이 비겁한가?
'아니야.'
아내는 나보다 나를 잘 알았다.
'말해봐. 뭐 있지?'
그녀를 속이는 건 불가능하고 무의미했다.
얘기를 들은 아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예상대로 네."
아내는 평소에도 항상 최악을 염두에 두고 행동한다.
난 다르다.
난 단순하고, 즉흥적이며, 다혈질이다.
내가 받는 충격을 상당했다.
난 아내가 검진을 받는 동안 커피숍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치 타이슨한테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손이 떨리고 힘이 없어서 머그잔을 잡을 수 없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링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아무도 내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 기분이었다.
난 혼자였다.
아마 그 순간부터 세상의 색깔이 달라졌던 거 같다.
누군가 락스를 쏟아부은 거 같이 내 눈에 비친 모든 것은, 마치 색이 다 빠져버린 그림 같았다.
온통 회색에 거무칙칙했다.
전범 재판에 섰던 나치가 이런 말을 했다.
'가스실로 유대인을 집어넣어 죽인 건 시켜서 한 겁니다. 내 죄가 아니에요'
그날 이후, 공황장애, 우울증에 시달린다.
거의 잠을 못 자고, 1시간 단위로 깬다.
식욕도 없다. 아내는 뭐라도 먹으라고 다그치지만, 체할 까 봐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정말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응급실에 실려가게 될 거 같았다.
가슴이 답답해서 새벽에 혼자 거실을 서성이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날이 밝으면 밖으로 나갔다.
시골은 오히려 산책할 곳이 더 없다.
길이 안 좋고, 신호등도 없고, 가로등도 없다.
차는 빠른 속도로 달린다.
여차하면 비명횡사할 수 있다.
결국 집 앞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찬바람을 쐬면 얼굴의 열기도 가라앉고, 혼자 중얼거리면 기분이 좀 나아졌다.
그래도 버티기 힘들면 항우울제를 먹었다.
확실히 효과는 있었다. 문제는 중독이다.
한국인에게만 있는 병이 화병이라고 하는데, 나도 화병이 생긴 거 같다.
매 순간이 날카로웠다.
별 거 아닌 일에도 쉽게 화를 냈다.
내내 참다 한순간에 둑이 무너지듯 눌렀던 감정을 쏟아낸다.
욕을 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고. 아프고. 약을 먹고.
아내가 말한다.
'시간이 지났잖아.'
난 말한다.
'칼에 찔렸는데, 시간이 지나면 안 아파? 칼을 뽑으면 다 낫는 거야?'
아내의 표정이 굳는다.
나도 웃고 싶다. 예전처럼 장난치고 싶다.
이 고통은 상처를 남길 것이다.
상처는 옅어질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