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둘째 날이다.
난 핸드폰을 사물함에 넣고 지급받은 슬리퍼를 신었다.
작업복과 달리 다행히 새것이었다.
군데군데 시꺼먼 때가 묻은 작업복은 이미 소매와 옆구리가 해져 있었다.
때를 지우려 비벼 빨았단 아예 찢어질 거 같았다.
영하 10도를 오가는 날씨에 얇은 작업복 하나를 입고 일했다.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온풍기로 추위를 견딜 수 있었지만, 자재와 하역장은 달랐다.
육중한 쇠문이 수시로 열리는데, 그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귀가 떨어질 거 같았다.
노동강도가 확실히 첫날과 다르다.
첫날은 설명을 듣거나, 간단한 심부름 정도만 했다. 주로 실내에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하역장에 있었다.
레일을 타고 쏟아져 나오는 5킬로 가까운 무게의 상자를 쉼 없이 쌓았다.
쌓는 법도 규칙이 있었는데, 그걸 신경 쓰다 보니 더 힘들었다.
얇은 상자는 8단, 두꺼운 상자는 6단이었다.
바코드가 반드시 밖으로 보이게 쌓아야 하고, 혹여나 하나라도 떨어뜨리면 안 됐다.
백만 원이 훌쩍 넘은 제품들이었다.
높이가 내 키보다 높은 8단까지 쌓으면, 기울기가 아슬아슬했다.
마치 피사의 사탑을 보는 듯했다.
개중엔 바코드가 잘 못된 경우가 있어, 다시 상자들을 내려놓고 다시 처음부터 쌓아야 했다.
차라리 이 경우는 다행이었다.
집에서 쓰는 랩보다 20배는 넓은 랩으로 쌓은 상자탑을 감았다.
다 감은 후, 바코드 위치가 잘 못 된 걸 발견하게 되면 더 일이 커진다.
수십 겹으로 싼 랩을 다 벗겨내고 다시 쌓아야 한다.
바코드를 찍는 기계가 있는데, 아무도 내게 작동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난 나보다 한 살 어린 선임에게 일일이 물어가며, 순간순간을 넘겼다.
당연히 선실수, 후대처였다.
선임도 자신의 일을 해야 해서, 날 지속적으로 도와줄 수 없었다.
솔직히 욕을 안 하는 것만 해도 고마웠다.
몸도 정신도 한 시간도 안 돼 녹다운 됐다.
점심을 먹는데, 구석에 혼자 앉았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아내가 걱정할까 봐 문자를 보냈다.
'밥 먹었어?'
'응. 할 만해?'
'응. 아직은.'
'힘들지?'
'괜찮아. 문자 보내지 마, 못 봐.'
'응. 응. 밥은 어때?'
'친구한테 사진 보내 줬더니, 자기네 병원 의사들보다 낫다고 하더라.'
'많이 먹어.'
'안 돼. 졸려.'
식당 여기저기서 대청소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침 조회에 대청소를 한다고 고지했다.
400평이 넘는 공장이다.
3등분 할 수 있는데, 중앙은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생산시설.
양 쪽 끝은 자재창고와 하역하는 공간이었다.
생산시설이 있는 공간은 실 내고 양쪽 끝은 실내와 실외의 중간쯤이었다.
아파트로 치면 현관과 중문 사이에 있는 신발장쯤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일 년에 한 번 하는 걸, 왜 내가 들어왔을 때 할까?
짜증이 확 올라온다.
문득 '청소할 사람이 필요해서 날 뽑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직이 날짜를 맞추려는데, 여기저기서 나이 든 여자분들이 변경을 요구했다.
'그날은 안 돼. 나 김장해야 돼.'
'그날은 내가 안 돼. 나 김장해야 해.'
날짜를 몇 번 옮기더니, 급기야 차장이 화를 냈다.
'여기가 직장이에요. 김장하는 곳이 아니고.'
그의 말은 분명 맞는데, 기분 나쁘게 말한다.
후일 같이 파트너가 된 동료의 말이, 차장만 조심하면 된다고 한다.
성질이 더러워 한 번 붙으면 관둘 각오 해야 한다고.
자신도 일전에 세게 붙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차장과 매일 얼굴을 마주치며 근무하고 있다.
오후엔 실내로 들어와, 박스의 손잡이를 끼우는 일과, 완성된 박스를 옮기는 일을 했다.
중국으로 가는 안마기였다.
사방에서 지적질이 이어졌다.
연령도 성별도 다양했다.
신기하게도 가르쳐주지 않은 일을 하라고 시키는 것이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난 존댓말을 했고, 그들은 반말을 했다.
돈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겁먹은 채 일한다.
여기저기 눈치를 보고, 미안하단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난 비트코인과 주식, 영끌한 청년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에 답이 없기 때문이다.
월급 받아선, 의사나 변호사, 대기업 직원이 아닌 이상 노후가 준비될 정도의 돈을 벌기 어렵다.
하지만 삶은 계속된다.
늙을 것이다.
대비를 해야 한다. 그런 걱정과 불안에 두려움에 투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부추기는 세력까지 한 몫한다.
누구는 몇 천 갖고 수 십억 부자가 됐다느니, 투자를 안 하면 바보, 루저라느니 몰아붙인다.
난 가난하기에 아예 시도도 못했지만, 그들이 잘 못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떻게든 살려고 버둥거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