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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비스커스 Feb 15. 2023

감사하는 마음의 비밀

가진 게 그것밖엔 안 남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다보니, 이제 글쓰는 일거리를 찾기 어렵다.

젊은 애들도 많은데, 늙은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를 불러줄 리 만무하다.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는 단가가 박하다.

10분에 100만 원 이하로 주는 곳도 허다하다.

나 역시 그런 대접을 받으며 일을 했다.

잘 나가는 작가들은 200만 원도 받는다고 하는데, 난 한 번도 그런 조건으로 계약한 적이 없다.


그래도 난 도장을 찍었다.

왜냐면, 먹고살아야 하니까.

내 실력이 뛰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난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다.

작품을 성공시키려 노력했다.

나 혼자만의 능력도 부족해, 아내의 도움도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늘 좋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작품이란 게, 아무리 시청률이 좋아도 0.4~0.8프로 정도다.

10억 작품이든 100억 작품이든 시청률에선 큰 차이가 없다.

그러니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가 대접받을 리 없다.

누구나 써도 그만인 장르가 되어버렸다.

난 그 판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왔다.

비루하고 비참한 인생이었다.

그렇게 50대가 되었다.


은퇴할 나이에, 뭐 하나 대표작이 없다.

누가 물으면 대답하기 창피하다.

말해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웹소설로 상도 받았다. 

그 작품을 e북으로 출간도 했다. 

장르가 공포였는데, 일년에 벌어들이는 수익이 만원이 안 된다. 

술자리 농담거리가 되긴 충분한 금액이다.

솔직히 결과를 내지 못한 무수히 많은 시나리오 계약이 더 큰 돈이 되었다. 

나에게 삶이란, 아이러니와 부조리의 연속이다.


세상은 비정상적이다.

세상은 정의나 도덕에 관심 없다.

폭력은 어디서든 난무한다.

난 만신창의가 됐다.

하지만 난 가정이 있다.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의 사연을 기사로 봤다.

모대기업이 자신의 디자인을 훔쳤다며

소송을 걸었는데, 대법원까지 가서도 패소했다.

그는 광화문에서 노숙하며 십년 가까이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 사이 명예도, 가정도,

집도 모두 잃었다

난 나의 수치와 억울함을 삭여야 한다.

그래야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얼마 전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를 아내와 봤다.

산속에 사는 노부부가 출연했다.

기르던 염소를 도둑맞았는데, 오히려 협박범으로 몰려 유치장에 갇혔다 한다.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 사이 자연인은 양쪽 어금니가 다 빠지고, 머리는 갑자기 백발이 되었다고 했다.

난 그의 고통을 안다. 억울함, 답답함, 자책감.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그를 집어삼켰을 것이다.

대법원까지 갔다면, 2심까지 패소했다는 뜻이다.

얼마나 절망했을까?

얼마나 죽고 싶었을까?


나 역시 그렇다.

물론 죽고 싶진 않았다.

다만 화가 나서 잠을 못 이루고, 식사를 못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얻었다.

숨이 가쁘고, 얼굴이 달아오르고, 만사가 귀찮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매 시간 잠에서 깨고, 밤 낮 없이 거실과 집 앞을 서성였다.  

시간이 가는 거, 계절이 변하는 것도 잘 느끼지 못했다.

아내의 얼굴도 점점 어두워져 갔다.

이런 상황을 멈추고 싶었지만, 내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약을 먹었다. 생전 처음 수면제도 먹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고, 잊으려 해도 되지 않았다.

불쑥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다.

휴대폰으로 맥박을 재면 항상 100이 넘었다.

스트레스 지수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솔직히 나의 몸상태는 가만히 서 있다 통나무처럼 바닥에 쓰러질 정도였다.


도망가고 싶었다.

이 사회가, 이 세상이 싫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딱 한 곳. 유튜브.

난 계속해서 나처럼 힘든 사람들의 영상을 봤다.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는 의사들의 영상도.

순간순간 도움이 되었다.

아픔을 공유한다는 게 그런 효과가 있었다.

마치 두통약처럼 잠시 고통을 마비시켰다.


이렇게 내가 글을 쓰는 것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4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중년들, 그리고 평생 무엇인가를 향해 달렸는데 결국 실패한 사람들.

인생은, 세상은 가혹하다.

하지만 혼자만 당하는 게 아니다.

투정 부리자. 누군가 들어주든 말든.

그렇게 잠시라도 잊으려 노력하자.

왜냐면, 우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 밖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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