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비스커스 May 04. 2024

나의 경매공부 이야기4

내가 아는 건 모른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나에겐 꼭 갖고 싶은, 살고 싶은 집이 있다. 

숲 속의 빌라인데, 외관부터 뛰어나다.

대리석을 붙여 만들었는데, 탄탄하고 정교해 보인다.

오죽하면, 빌라 이름이 '고급빌라'다


분양부터 그 컨셉이었다. 

주변은 모두 숲으로 대저택들이 자리하고 있다. 

언론에도 소개된 빌라로, 분양가가 거의 10년 전인데도 3억 조금 안 된다. 

이 집은, 우연히 항공사진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 경매에 나온 걸 알게 됐고, 최저가로 입찰했다 망신만 당했다.


난 계속 이 집을 관심에 두었다. 

나오면 사고 싶기 때문이다.

가끔 나왔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당연했다. 

손해보고 팔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근데 경매로 얼마에 팔렸는지 뻔히 아는 나는, 그 가격에 도저히 살 수 없었다. 

여기서 갭이 생긴다.


몇일 전, 그 집이 다시 나왔다. 

꽤 떨어진 가격이었다. 

난 아내 몰래, 연락을 취했다. 

더 깎아주면,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내가 말한 가격은 불가능하고 조금 더 오른 가격엔 팔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제시한 가격으론 빚도 못 갚는다는 설명이었다. 

등기를 떼 봤는데, 이 집보다 한참 싼 곳에 집주인이 살고 있었다. 

어쩼거나, 난 오케이하고, 아내에게 말햤다. 


아내는 내가 워낙 그 집을 좋아하는 걸 알기에, 울며겨자먹기로 한 번 보자고 했다. 

난 8부능선을 넘은 기분이었다. 

아내는 대출을 위해 은행에 가려했다. (성격이 확실하다)

하지만 난 그 집을 먼저 보자며 아내를 설득했다. 

그리고 약속을 잡고 집을 방문했다. 

(주인은 월세를 주고 있었다)

주차장엔 외제차가 여러대 자리하고 있었다. 벤*, b**


사실 난 몇 번 이 빌라에 와 본 적이 있다. (매 번 아내를 졸랐다)

안은 들어가지 못했지만, 유튜브를 통해 실내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오 마이 갓

모든 집의 계단마다 짐이 가득가득했다. 

한마디로 청소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아예, 선반을 갖다 논 집도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조금 기다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오 마이 갓

집 안에 기둥이 있었다. 

가로세로 70미터의 사각형의 기둥이 주방 앞에 떡 하니 박혀있었다. 

임차인은 60이나 70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자고 있었는지 부시시 했다. 

그는 그 기둥이 지열배관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열보일러가 자주 고장난다고 덧붙였다. 

지열보일러의 가격은 8백만원쯤 한다고 하고 매년 수리비용이 30만원쯤 드는데, 

직접 고쳐야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부품비용이었다. 

한 여름에도 4만원쯤 보일러 비용이 나온단다. 켜지도 않는데 말이다.


더 웃긴 건, 시스템에어컨인데 보일러를 켜면 에어컨이 작동을 안 하는 구조다. 

그러니 누군가 샤워를 하면 에어컨을 못 켜고, 에어컨을 켜면 샤워를 못한다. 

그래서 자기는 한 번도 에어컨을 작동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천장의 에어컨은 뭐지? 벌레 구멍?

벌레도 많다고 한다. 


주방은 지금 사는 집보다 작았고(전용면적은 더 큼에도 불구하고)

세탁실도 너무 좁아, 우리 집 세탁기가 들어가지도 않을 거 같았다. 

욕실은 두 개인데, 안방 욕실이 거실보다 컸다. 

(보통은 반대인데)

환기나 해가 들지 않는지, 다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누수는 없냐는 나의 질문에, 아래층에서 계속 항의가 온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난 내 자신을 계속 설득했다. 


'고쳐 살면 돼. 가격이 싸잖아. '


몇 가지 사항이 더 있었는데, 위의 하자보단 자잘했다. 

아내와 돌아오는 길에, 난 침묵했다. 

기대가 산산이 부서지니, 약간 충격이 왔다. 


'역시 안 되겠지?'

'응. 안 돼.'

'사람 살 곳이 아니야. 그치?'

'응. 리조트네'


맞다. 그 집은 리조트로 지은 집이 었다. 

그러니 주방이 클 필요도 없고, 세탁실이 클 필요도 없었다.

하루 묵을 곳인데, 기둥이 있어도 뭔 상관인가.

놀러 온 거니, 안방 욕실이 클 수 밖에.

내가 유튜브로 본 집은, 이 빌라의 바로 옆 동인데

리조트 사업이 어그러지니, 다른 구조로 지은 것이었다. 


우린 너무 기운이 없어, 외식을 하기로 했다. 

난 아주 찬 물냉면을 먹었다.

아내는 비빔냉면을 먹었다. 

난 반도 못 먹었다. 육수만 마셨다.  입이 꺼끌꺼끌 했다. 

다 먹다 간 체할 거 같았다. 

그러다 뭔가 뇌를 번쩍 때렸다. 


'실망할 필요 없다. 오히려 행운이다. 보길 잘 한 거 같다'

'왜?'


아내가 물었다. 난 대답했다. 


'이걸 경매로 샀다고 생각해봐. 답 없지? 인테리어 비용으로 삼천이 들지도 몰라. 주민들은 계속 싸운다잖아.'

'맞다.'


세상 일이 그렇다. 

확실하다고 믿은 일도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그 빌라는 지금도 매물로 나와있다. 단 독 동인데. (두 동은 10년째 수리 중이다)

8채 중 3채가. 


추신:

임차인이 나에게 조언을 해 줬다. 

이 거 사지말고, 전원주택 사라고 한다. 요즘 많이 떨어졌다고. 3억이면 산다고.

안 방엔 각종 고급시계가 테이블에 놓여 있었고, 벤* 키도 보였다.

나도 전원주택 사고 싶다고. 

'돈이 없어요.' 라며 웃었다. 그도 말문이 막혔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세상과 접촉할 수록, 자괴감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원소와 전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