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년차 작가다 1

입문

by 히비스커스

나는 50 초반의 남자다.

대학을 졸업한 후 줄곧 글을 썼다.

20년이 훌쩍 넘는다.

(개인적으로 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이 무슨 글을 썼을까? 드라마 대본을 썼고,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딱히 일을 가리지는 않았다.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온갖 종류의 글을 썼다.

그 와중에 대본을 쓰며, 시나리오를 썼고, 매년 방송국 공모에 지원했다.

한 작품을 낸 적도 있고 여러 작품을 내기도 했다.

영진위나 기타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도 빠짐없이 작품을 냈다.

결과는 처참했다.


물론 작은 공모전엔 당선된 적이 있다.

30 중반쯤, 지방의 한 지자체에서 개최한 공모전에 당선돼 상금 500만 원을 받았다.

그게 첫 수상이었다.

전화를 받던 날, 기분이 찢어지게 좋았다.

'내 인생도 이제 펴는구나. 영화로 만들어지면 대박 나고 상도 받겠구나.'라고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비단 그 작품만이 아니라, 내가 쓴 모든 시나리오와 대본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시상식 때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수상자는 자신의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었다.

추측컨데, 개인 돈으로 제작비를 충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리 저예산이라도 5천에서 1억 가까운 돈이 든다.

그때도 지금도 난 엄두도 낼 수 없는 돈이다.

나보다 한 살 많은 그는 알고 보니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곳을 나왔고, 상업영화 크레디트 타이틀을 가진 프로였다.

그는 지금도 계속해서 장편 극영화를 찍어 개봉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의 영화들은 관객수가 몇 천명도 되지 않는 저조한 흥행 기록을 남겼다.

평론가들의 평 또한 좋지 않았다.

최근작 역시 ' 경치가 아깝다'란 짧은 평을 들었.


나는 상금으로 친가와 처가 식구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샀다.

고마움에 대한 보답의 의미도 있었지만, 신혼초에 받은 첫 수상이어서 자랑하고 싶었다.

그 당시 난 애니메이션 회사와 계약해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대표는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원로이며, 미국에서는 로봇 만화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나는 식사자리에서 은근히 수상 얘기를 하며 자랑했다.

백발에 젠틀한 대표는 자신들에게도 좋은 일이라며 기뻐했다.

난 그들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과의 작업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엎어졌다.

내 시나리오에 대한 평은 나쁘지 않았다. 투자 문제가 생긴 거 같았다.

그렇게 몇 개월 만에 백수가 되었다.


그래도 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곧 유명 작가가 돼서 미니시리즈도 쓰고 영화도 개봉할 거라 막연히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때 절망해서 다른 길을 찾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와서 후회한다.

실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거 같다.

나이만 왕창 먹어 고용주가 불편해하는 고용인이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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