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년차 작가다 2
대학에서 만난 방송국 피디
운이 좋았다.
글을 쓰기로, 글로 먹고 살기로 결심한 것은 대단한 착오였지만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난 여의도에 있는 교육기관을 나왔다.
그곳에선 드라마 작가들이 원생들에게 작법을 가르친다. 70만 원인가를 내고 6개월 수강을 한 거 같다.
오전반 오후반 해서 일주일에 한 번 교육원에 나갔다.
사실 난 드라마를 배울 생각이 없었다. 그를 만나기 전 까지는.
어렸을 땐 만화영화를 좋아했다.
일요일 아침이면 '은하철도 999'를 봤다.
그러다 축구시합이라도 잡히면 어김없이 공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친구들과 노는 게 만화영화를 보는 것보단 좋았기 때문이다.
만화도 그럴진대 드라마를 챙겨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니시리즈나 연속극 드라마를 끝까지 본적이 거의 없다.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달동네'는 꽤 자주 봤던 것 같다.
똑순이 역할을 했던 김민희 씨가 귀여웠던 기억은 있지만, 내용은 거의 생각이 안 난다.
매일 친구들과 축구나 야구를 했고, 가끔은 다방구나 술래잡기를 하며 밖에서 늦게까지 놀았다.
종일 뛰어놀고 집에 오면 늘 졸렸다.
눈을 비비며 숙제를 해야 했기에 tv볼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런 내가 드라마 작법을 공부하는 곳에 앉아 있었다.
이 어색한 광경의 기원은 대학교 때 시작되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수업 중 촬영, 연출에 관한 과목이 있었다.
강사는 동문선배인 방송국 피디였다.
그 시절엔 학생회 간부면 시험 없이 방송국에 취직하던 때였다고 한다.
이후 그는 단막 드라마로 외국에서 유명한 상을 받았다 한다.
상업적으로도 성공해 유명 소설을 각색한 대하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는 강의를 위해 학교에 올 때, 중견 연기자와 항상 동행했다.
아마 운전수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수업시간 내내 중견 텔런트는 강의실 밖에 앉아 있었다.
누구와 대화하지도 않았고, 책을 보지도 않았다.
그의 역할을 기대했던 나는 아직도 그가 왜 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게 된 건, 방송국이 적자에 시달리는 이유였다.
그는 강의를 하기 전, 10년 가까이 작품을 연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매년 큰 금액의 연봉을 받아왔다.
내가 졸업한 후에도, 그의 작품은 방송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단 한 작품도 연출하지 않고 은퇴했다.
당연하겠지만 상당한 금액의 퇴직금을 챙겼을 것이다.
수업은 매우 작은 강의실에서 이뤄졌는데, 학생수가 그만큼 적었던 거 같다.
이제는 20년도 넘은 일이라 솔직히 나의 기억을 믿을 순 없다.
어쨌건 난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출석했다.
어느 날은 단 두 명이 전부인 때도 있었다.
보통 연영과 학생들은 실습을 하느라, 아님 그냥 습관적으로 수업에 안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난 사학과라 그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노닥거리는 것보다 수업을 듣는 편이 좋았다.
강사는 '겨울채비'란 일본 드라마 대본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돈 주고 샀는지 공짜로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늙은 남자가 아내의 죽음 이후 자살여행을 떠나는 내용이었다.
가진 재산을 모두 현금화시켰는데, 절약하던 습관이 있어 여전히 싸구려 음식을 먹는 남자의 모습으로 극이 시작됐다.
그러다 젊고 가난한 연인을 만나고, 함께 여행한다는 조건으로 그들에게 자신의 돈을 모두 주겠다고 제안한다.
젊은 연인은 그를 이상하게 여기지만 같이 여행을 하게 된다.
마지막에 자살하려던 남자는 동년배 친구를 만나 함께 생을 이어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 피디는 걸작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지만, 지루했다.
일본 드라마는 늘 그랬다. 딱히 부딪히고 싶지 않아서 말을 아꼈다.
그 당시 나는 작법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는 상태였기에 더욱 그랬다.
당시 피디가 나에게 준 책이 한국방송작가교육원에서 발간한 신인상 수상집이었다.
그 안의 작품들을 다 읽었다.
지금 기억나는 건 '정성희' 작가가 쓴 사극이다. 그 작품이 대상이었던 거 같다.
정성희 작가는 이후 크게 성공했고, 유명한 스타작가가 되었다.
'내가 작가 만들어 줄게'
학교 선배이자, 방송국 피디였던 강사가 수업 초에 한 말이다.
어리석게도 난 그의 말을 믿었다.
작가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다.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난 뭘 해야 할지 고민했다.
대학 때 성적이 아주 좋았다.
특히 시나리오 작법 과목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난 당장 뭔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드라마 작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쓴 작품을 피디가 연출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꿈을 꾸었다.
상도 받고 유명해지면 글로도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감이 생기자 뭔가 길이 보이는 거 같았다.
그건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길이었지만, 그땐 몰랐다.
아니 알았지만, 난 예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천 명 중에 한 명이 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곳에서 아내를 만났다.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순간,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만났으니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