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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장난시계 Oct 30. 2023

나의 공직생활 연대기(1)

공무원, 왜 그만뒀어요?

"왜 그만두셨어요?"


지난해 7월 , 약 3년(정확히는 2년 10개월)을 몸 담았던 공직을  떠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과장 좀 보태어 1년 동안 한 30번 들었던가. 내가 공무원을 그만두고 새롭게 만난 사람이 50여 명이 채 안 됐던걸 감안하면 약 3분지 2의 사람들이 내게 어김없이 던진 질문.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인터넷에 유명하게 돌던 짤이 떠올랐다. K대 출신이었나? 9급 공무원이 되고 나서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왜 하필 9급이냐고' 물어보는 통에 돌아버릴 것 같다며 울화를 토해내던 그분의 표정. 그분은 지금쯤 지겹디 지겨운 질문세례에서 해방되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9급 출신이 퇴직 때까지 영영 9급인 건 아니니까, 지금쯤 못해도 최소 7급은 달았을 테니 이제 그런 속 뒤집는 질문은 안 받으시겠지. 앞으로 10년간은 '왜?'라는 질문을 받게 될 나보다 그분이 더 나은 상황 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공무원은 피곤한 직업이다.


분명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배웠는데, 유독 공무원은 적정자격이란 디폴트 값이 분명한 느낌이다. 9/7/5라는 명확한 구분 때문인 걸까. 누군가는 고작 거기에 안주하냐며 질타받고, 또 누군가는 네까짓 게 뭔데 든든한 철밥통을 걷어차냐며 타박받는다.

  

물론 나는 후자였다.


후에 상세하게 서술하겠지만 나는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무스펙 인간이었다. 대학 졸업 시점에 공인어학점수 하나 없었고(그 흔한 토익 시험 한번 쳐본 적이 없으니) 자격증이라고 해봐야 군대 전역 후 날치기로 딴 워드프로세서 달랑 하나, 공모전 입상이나 인턴십 경험 하나 없이 이력서가 아주 백지처럼 깨끗하고 간신히 졸업이수학점만 채운 순결(?)한 대졸자를 누가 반겨주겠는가. 보잘것없는 스펙과는 별개로 대학 입학 때부터 졸업까지 8년이라는 시간을 나름 치열하게 보냈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건실한 이력이 없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팩트였다. 그때만 해도 9급 공무원은 본인처럼 변변찮은 스펙이랄 게 없는 사람들의 최대 인풋이자 인생 역전의 기회였고, 삶은 운칠기삼이라는 인생격언을 나는 몸소 느끼며 2019년 8월 꼴찌로 내 고향 지방직 9급에 합격했다. 내 나이 서른하나였다.


돌이켜보건대, 정말 나는 운이 좋았다.


당시 겪고 있던 집안일에 대한 도피의 수단으로 공무원 준비를 해서인지 다른 준비생들처럼 수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었다. 외려 인강을 듣고 문제를 풀며 집안사정으로 쌓였던 스트레스를 해소했고, 딱  번만 해보고 떨어지면 미련 없이 접을 요량으로 취약과목을 아예 버렸던 도박수가 운 좋게 들어맞으며 시험에 합격했다. 한 문제라도 더 틀렸으면 공직은 고사하고, 면접장까지 가지도 못했을 텐데. 예상합격 커트라인에 아슬아슬 걸친 덕분에 발표일까지 가슴깨나 졸이긴 했지만, 막상 합격하고 나니 그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원래 합격은 문 닫고 들어가면 장땡 아닌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렸던 지자체의 사정으로 수석, 꼴찌 나눌 거 없이 우리 모두는 같은 날에 인사발령을 받았고 그렇게 나의 짧은 공직생활 시작되었다.


운은 합격 후에도 계속되었다. 누구는 처음부터 힘든 본청에 발령 나거나 또는 혼자 덩그러니 낯선 사무실로 배정됐다는데 나는 비교적 편하다는 면사무소, 그것도 의지할 동기들이 둘이나 되었다. 거기에 어벤저스급 팀원들까지. 팀장님은 지역 내에서 유명한 천사표 마더 테레사였고, 서무는 고도의 멀티태스킹 능력을 바탕으로 혼자 2~3명 몫은 거뜬히 하는 걸로 정평난 재원이었으며 내게 업무를 인계해 준 팀원은 퇴근 무렵 일체의 흐트러짐 없이 말끔히 정돈된 책상과 서류함으로도 설명 가능한 출중한 인재였다. 이런 훌륭한 팀원들 덕분에 잠깐이나마 출근이 즐거웠고, 심지어는 이렇게 일하고 월급 받아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하하. 물론 그 생각이 오래가진 않았지만. 이 시기의 나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했다.


만날 때마다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만 푹푹 쉬 죽상인 얼굴들. 월급이 너무 초라하다, 이런 일까지 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너무 힘들다, 내가 생각한 공무원은 이게 아닌데. 하나같이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냉난방시설 하나 없는 창고에서 밥 먹듯 야근해도 월급 130만 원에 감사했고, 직원 다섯 명이 있으면 다섯 명 모두가 모든 업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장 밑에서도 굴러봤고, 함께하는 직원들이 다들 너무 좋았으니.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공무원에 대한 기대 환상이 제로였다. 애초에 기대한 이 없으니 실망할 일도 없을 수밖에. 힘들다며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던 동기들에게, 나는 말했다.

 

"우선 3개월만 버텨봐. 3개월 버티면 3년까진 버틸 수 있대. 3년 차에 또 고비가 온다는데 그때 가서 설마 관두겠어? 다닌 게 아까워서라도 그냥 쭉 다니겠지."


저 말을 내뱉던 당시의 나도, 그 말을 들었던 동기들도 우리 아무도 몰랐을 거다. 공무원이 천직 같아 보이던 이 양반이 이렇게 리타이어 할 줄은. 나라고 뭐 3년 가까이 다닌 게 아깝지 않을 리가 있나. 머리로 계산하면 손해 보는 장사인 거 알지만 가슴이 시키는 걸 어떡해. 내 사직서는 가슴으로 쓴 게 맞다. 복잡한 계산 치우고 쓴 건 맞는데 그래도 충동적으로 쓴 건 아니다. 나름 2년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니까.


후회합니까?


종종. 그렇지만 계속 다녔으면 안 그만둔 거에 대한 후회가 더 컸을 테지.


뭐가 힘들던가요?


생각보다 가욋일이 많았고, 달력에 찍힌 빨간 날에 비해 온전히 쉬는 날이 몇 없었고, 내 부족한 능력에 좌절하기도, 성 민원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기도 했고... 열 번 질문하면 열 가지 다른 대답을, 스무 번 질문하면 스무 가지 다른 이유를 내놓을 수 있다. 어떤 날은 이게 별로였고, 또 어느 날은 저게 별로였던 거 같고. 그때그때 순간마다 떠오르는 대로 대충 둘러댔다. 왜냐하면,


실은 버틸만하고 견딜만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공직생활이 크게 힘들지 않았다. 노예들이 모이면 누구 사슬이 제일 굵은지 자랑한다더니 이놈의 공노비들 또한 모였다 하면 누가 더 부림 당하는지 서로 겨루느라 바빴고, 본인도 지기 싫은 마음에 꽤 앓는 소리를 지껄였지만 사실 그냥저냥 다닐만했다.


팀원들도 좋았고,

직장 내 평판도 나쁘지 않았고,

소박한 씀씀이에 차고 넘치는 월급.


이런 내가 아니면 누가 공무원에 어울릴까. 근데 왜 관뒀냐고?


애써 버틸 만큼 재미도, 보람도 없으니까.


견디고 갉아먹으면서 나를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직장과 직업이 그저 돈벌이만을 위해 억지로 버티고 견뎌내야 하는 거라면 안 그래도 팍팍한 삶이 너무 고되지 않은가.


그러니 공직을 떠난 자들이여, 너무 의기소침말자.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 투성이인 세상에서

직업 하나쯤 관두고 선택할 자유

우리 모두에게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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