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들은 당신을 믿지 않는다
착함에 대한 오해
"걔 착하더라. 사람들이랑 두루두루 친해 보이고."
이런 평을 자주 듣는 이들이 있다. 누구랑 크게 척지지 않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나도 그런 유형의 사람이다. 삼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어느 그룹에 속해있든 종합적으로 '괜찮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 같다. 주변사람들에게 그런 인정을 받으려 꽤 애쓰기도 했고. 누군가가 나를 좋은 사람이라 말해주는 것이 듣기 좋았다. 하긴 저런 말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남들보다 조금 더 그런 평가에 민감했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나의 착한 사람 꾸밈이 시작되었다.
원래 애가 착해.
천만의 말씀. 착함을 연기할 때 주어진 보상이 달콤했을 뿐이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착하다는 말을 듣는 건 누워서 떡먹기보다 쉽다. 조용히, 아무 불만도 표출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은 착하다는 표현을 남발한다. 학교에서 체벌을 당연시했던 그 시절, 떠들면 매 맞는 게 싫으니까 짝꿍하고 수다 떨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을 뿐인데 선생님은 나를 모범생이라고 여기며 칭찬해 줬다. 장난기 많은 말썽쟁이 친구들의 따귀를 올려다 부쳤던 크고 두꺼운 손바닥이 내겐 그저 머리칼을 간질이는 강아지풀이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착함을 연기할 이유는 충분했다. 나는 맞는 게 정말 싫었고, 그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정적강화와 귀찮은 당번 같은 것을 면제받을 수 있는 부적강화가 동시에 주어지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잖은가.
그렇게 6년을 지내니까 어느새 나는 모두가 인정하는 착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졸업생대표로 선행상을 받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300여 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 내가 제일 착한(척 한) 애였다는 건 인정. 그런데 나는 선행을 한 적은 없는데? 고백하지만 나는 타인을 위해 봉사하거나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들을 위해 맞서 싸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흔히 말하는,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만큼 정의감이 불타올라 불의를 못 참고 이성을 놓친 적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을 괴롭힐 만큼 힘이 세거나 덩치가 크지 않았고, 괜히 나댔다가 흔히 말하는 일진들의 표적이 될까 봐 있는 듯 없는 듯 평온한 학창 시절을 보냈을 뿐이다. 체구가 작고 겁 많았던 아이가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호구지책이었을 뿐인데 무려 학년을 대표로 선행상을 주다니. 이게 맞는 건가? 나는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아아,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란 건 나한테 태클 걸지 않는 사람이구나.
좋아. 그런 사람을 원한다면 그런 사람으로 살아주겠다, 다짐했다.
나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지만, 모두와 편이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배신감에 치를 떨며 분통을 터뜨리는 대신 어쩌다 그럴 수도 있는 게 사람이라며 너그러운 태도로 일변했다.
어지간한 일에는 결코 화를 내지 않았다.
상대방의 실수에는 한없이 따뜻하지만 나의 손해에는 한없이 쿨한, 냉난방기처럼 필요한 시기에 따라 걸맞은 온도의 바람을 불어주는 사람. 그게 나였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을 믿지 않으니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느낄 배신감과 실망이라는 감정은 결국 그 사람에 대한 기대감과 신뢰의 크기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누군가 나의 실수와 태도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낸다 하여 무조건 기분 나빠하지 말자. 그만큼 당신에게 기대하고 당신을 신뢰했다는 의미일 수 있으니. 그리고 명심하자.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어떤 잘못을 하든 가타부타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마냥 착하고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음을.
그들은 당신을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