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 그 속도를 넘어 몰입과 자유에 닿는 순간까지.
아니메로 시작해 다이캐스트, 피트월의 눈물까지.
F1이라는 스포츠가 어떻게 현재 가장 열정적인 취미 중 하나가 되었는지-
그 안에서 발견한 수집의 아름다움, 인간 드라마, 기술의 경이로움,
그리고 삶의 감각을 이야기합니다.
영화 <F1: 더무비>가 현재 250만 관객수를 넘어서며, 올여름 극장가의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요즘 F1 뉴비 팬들의 유입이 어느 때보다 많아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얼마 전, 한 커뮤니티에서 ‘F1에 입문하게 된 계기’에 관한 흥미로운 질문이 올라왔고, 수많은 팬들이 저마다의 '입덕 사연'을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어느새 그 글들을 읽으며 문득 제 시작점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되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시작에는 역시나 아니메,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사이버 포뮬러>는 지금도 손에 꼽을 만큼 애정하는 명작인데, 정작 현실의 F1에는 오랫동안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코너에서 드리프트도 없고, 시속 500km를 거뜬히 찍는 만화 세계관에 익숙한 저는 시속 350km 정도면 "겨우 이 정도?"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알록달록 개성 있는 사이버포뮬러 머신들에 비해 F1 차량들은 얼핏 보면 모두 비슷하게 보일 만큼 심심한 외형이란 인상을 줬습니다.
그러다 2022년, 에너지 음료 브랜드로만 알고 있던 '레드불'이 F1 무대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막스 베르스타펜’이라는 드라이버도 처음 알게 되었고요. 이듬해인 2023년에는 넷플릭스의 <본능의 질주 (Drive to Survive)>를 보기 시작했고, 이후로는 쿠팡플레이 중계, 유튜브 쇼츠, 레고, 다이캐스트 수집까지 이어지며, 어느새 제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인 취미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레드불과 베르스타펜으로 F1에 입문했지만, 지금은 메르세데스 팀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 스스로도 신기하고 재미있을 따름입니다.
F1의 매력은 하나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저를 F1에 매료되게 만든 걸까요? 명확히 정의 내리기란 어렵지만, 분명한 건 그 매력이 결코 하나에 그치지 않았단 점입니다.
평소에도 피규어나, 악기, 서적과 같은 수집을 꾸준히 해온 저에게도, F1 다이캐스트 모형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이 모형 수집을 통해, F1 머신들의 정교한 디테일을 음미할 수 있는 시안과 손 끝으로 느낄 수 있는 촉각적 즐거움,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기술적/예술적 매력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팀마다 차량의 컬러와 디자인, 리버리 콘셉트가 각기 다르고, 시즌마다 기술 규정의 변화에 따라 차량의 외형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점 역시 디자이너적 시선으로도 매우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모형들을 수집하고 탐색하다 보면, 자연스레 시대를 거슬러 올라 역대 위닝카들과 클래식카들까지 관심이 확장되어, 시대별 디자인과 감성의 흐름을 되짚어 보게 됩니다. 때로는 각 차량이 단순히 레이스를 위해 탈 것이 아닌, 당대의 철학과 미학이 응축된 모빌 아트 (Mobile Art) 같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디자인 아이콘이자, 그 시대만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있지요.
드라이버들의 헬멧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선수 개개인의 개성과 취향,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상징이자, 팬들에게는 또 하나의 수집 포인트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주로 1:18 스케일과 1:43스케일을 병행하며 수집 중인데, 특히 1:43 스케일은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크기 안에 디테일과 세련미, 그리고 독특한 귀여움까지 모두 담겨 있어 그 매력이 상당합니다. 소위 '다이캐스트 수집'이라 불리는 이 수집 문화는 F1 넘어- 전반적인 자동차 문화의 깊은 층위를 이루고 있는데요, 많은 수집가분들께서는 1:64 스케일의 초소형 모형을 중심으로 휴대해 다니며, 야외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그 속에서 디테일한 장면과 구도를 새로이 창조해 내는 것을 목격합니다.
결국, 이 작은 모형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와 미감은 단순히 눈으로 즐기는 것을 넘어, 시간을 음미하고 감성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저에게 자리 잡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1:43 스케일 모델 안에 담긴 거대한 이야기- 마치 미니어처 속의 시간을 수집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게 이 수집의 매력 중 하나인 것도 같습니다.
저 스스로도 '덕후 기질'이 다분함을 인정하는 편입니다. 관심사가 워낙 넓은 데다, 음악이든 영화든 일단 빠지면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이죠. 스포츠 쪽에서도 축구와 농구를 즐기긴 했지만,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몰입했던 스포츠는 F1이 처음입니다.
F1은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는 그 진가를 온전히 느끼기 어렵습니다. 차량의 기술 구조, 공기역학, 시즌별 규정, 전략의 디테일, 팀 간 정치적 역학 그리고 긴 역사까지 어우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알면 알 수록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많은 만큼, 일정 수준의 지식과 배경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F1은 종종 "진입장벽이 높은 스포츠"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 역시 무리는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오히려 이 지점이 저에겐 F1만의 특별한 매력으로 작용했습니다.
무엇보다 '자동차'라는 주제 자체가 워낙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는 점은 또 하나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마침 신형 데일리카를 새롭게 장만했던 시기와 F1에 입문한 시기가 맞물렸던 덕분에, 도로 위의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선까지도 함께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배움의 과정을 여러 커뮤니티에서 다른 팬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즐겁습니다. 최근 <F1: 더 무비>의 영향으로 뉴비 팬들이 유입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입문자들의 질문에도 기꺼이 발 벗고 나서 설명해 주는 올드팬들의 친절함을 자주 목격하곤 합니다. 덕분에 저 역시 '배우면서 즐긴다'는 덕질의 근본적 방식을 체감하게 되었고, F1이라는 세계가 단순히 혼자만의 세계가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입체적 취향의 장르로 확장되고 있는 듯합니다.
F1은 그저 달리는 자동차를 보는 스포츠가 아니라, 알아가는 만큼 더 넓어지는 세계입니다.
속도를 즐기기 위해선, 먼저 그 이면의 논리를 이해할 줄 아는 것- 그 역시 크나큰 즐거움입니다.
F1은 겉으로 보기에 드라이버와 머신이 주인공인 스포츠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만큼 자본주의적이고, 기술과 전략이 노골적으로 지배하는 세계도 드물다란 생각을 합니다.
드라이버는 말하자면 거대한 조직 구조의 ‘끝단’에 위치한 최종 인터페이스일 뿐입니다. 실제로 레이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수많은 엔지니어, 전략가, 팀 매니지먼트, 피트 크루 등 각자의 위치에서 완벽한 역할 수행을 해내는 집단지성의 유기체입니다. 이들은 누가 특별히 더 빛나지도, 뒤처지지도 않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두가 하나의 목표–단 하나의 성과만을 향해 매섭도록 집중된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엔지니어링의 첨단, 전략적 사고, 물류와 데이터 분석, 커뮤니케이션 능력까지—F1 팀의 모든 구성원은 매 순간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이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작동합니다. 그 안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두뇌들이 모여 만들어낸 정밀한 공학 시스템과, 무대 뒤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권력 게임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We win and lose as a team.
우리는 이겨도 같이 이기고, 져도 같이 진다.
- Lewis Hamiolton (루이스 해밀턴)
도전·용기·꿈이 펼쳐지는 세계이기도 하지만, 결코 낭만과 이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 곳이 F1 입니다. 과감한 투자가 없으면 생존조차 어려운 세계이며, 거대한 스폰서십과 복잡한 정치적 역학, 팀 내외의 전략적 줄다리기가 끊임없이 벌어지는 냉혹한 비즈니스의 장입니다. 어느 순간엔 철저히 계산된 현실 앞에 낭만이 밀려나기도 하고, 눈앞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감정과 우정조차 전략의 일부가 되기도 하지요.
그런 점에서 F1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현대 사회의 압축 판이자 자본주의의 가장 정제된 형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안에서,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하나의 팀이 만들어낸 결실이 시즌 말에 화려한 결과로 보상받는 구조는 언제나 경외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 치열한 생태계야말로 현대 산업과 조직의 이상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F1만큼 ‘팀 내 경쟁’이 핵심적인 서사가 되는 스포츠도 드뭅니다. 같은 차량을 타는 또 다른 단 한 사람, 바로 팀메이트가 가장 직접적인 비교 대상이자- 가장 치열한 라이벌이 되기 때문입니다. 소속 팀이 드라이버에게 좋은 차량을 선사하면- 해당 시즌의 우승 경쟁력이 높아지지만, 그만큼- 팀메이트와의 경쟁 또한 자연스레 치열해지기 마련입니다.
물론 현재 레드불의 '막스 베르스타펜'처럼 예외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총 4번의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을 기록한 그의 드라이빙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에- 그의 드라이빙 실력과 늘 비교의 대상이 되는 팀 메이트에겐 항상 '저주받은 두 번째 시트'라는 꼬리표가 달립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팀메이트 간의 신경전과 경쟁은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줄거리를 이룹니다. 응원하는 팀이 선두를 달리고 있어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이 내부의 긴장감, F1만의 낭만이자 매력임이 분명합니다.
모든 스포츠에는 그 나름의 서사가 존재하지만, F1의 현장은 그야말로 ‘인간극장’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같은 팀에 소속된 드라이버끼리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구조는,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동시에 가장 냉정한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고스란히 투영해 줍니다. 가족, 친구, 동료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연대, 그 얇은 경계선 위를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드라마가 바로 이 스포츠의 본질 중 하나이죠.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벌이는 최상위권의 싸움은 물론이고, 중위권·하위권 드라이버들의 생존 경쟁 역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합니다. 포인트 하나, 한 자리 순위가 다음 시즌 계약 여부를 결정짓고, 수년간의 커리어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영웅서사뿐만 아니라- 비극과 희극도 동시에 공존합니다.
바로 얼마 전, 2025년 영국 그랑프리에서 그런 휴먼드라마의 결정판이 펼쳐졌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니코 휠켄베르크. 한때 '무포디엄 최다 출전 드라이버'라는 불명예와 농담이 따라붙었던 휠켄베르크는, F1에서 무려 15년간 단 한 번도 포디엄에 오르지 못한 채 수많은 기회를 놓쳐야 했습니다. 우수한 예선 성적과 빠른 랩타임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불운에 발목을 잡혔고, 여러 차례 시트를 잃고 복귀를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도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5년 실버스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와 팀의 완벽한 전략, 그리고 휠켄베르크 본인의 놀라운 집중력이 어우러져- 그는 마침내 경력 207번째 그랑프리 출전 만에 첫 포디엄에 오르게 됩니다. 그가 팀 라디오로 울먹이며 “믿을 수 없다”며 외치던 순간, 피트월의 모든 팀원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끌어안던 장면은, 단지 레이스 결과를 넘어선 15년 기다림의 보상이자, 인간 승리의 진정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서사는 비단 휠켄베르크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닙니다. 한때 F1을 떠났다가 극적으로 복귀한 드라이버, 리저브로 남아 기회를 기다리는 신예,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세컨드 드라이버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을 가슴에 품고 달리고 있습니다.
포디엄에 오르는 것만이 승리는 아닙니다. 때로는 한 그랑프리 완주 자체가, 혹은 첫 포인트를 따내는 순간이 어떤 이에게는 인생의 하이라이트가 되기도 합니다. 그 안에는 눈부신 영광뿐만이 아닌- 재능과 근성, 우정과 배신, 인내와 우연이 교차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순간은 트랙 위뿐 아니라, 라디오 너머의 한숨, 경기 후 인터뷰의 떨리는 목소리, 피트월의 표정, 서로 등을 두드려주는 피트 크루들의 손길 속에-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존재합니다.
F1은 거대한 자본과 기술의 각축장이자, 정치가 얽힌 무대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를 울리는 건-
그 안에서 끝끝내 사람으로 살아남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F1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거대한 월드 투어입니다. 매년 20여 개국을 오가며 열리는 그랑프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각 도시와 국가의 문화, 서킷이 품은 역사와 지형적 특징까지 함께 마주하게 됩니다. 레이스를 보다 보면 문득, 그랑프리가 열리는 도시의 공기와 햇빛, 팬들의 열정과 배기음 소리 그리고 아스팔트 냄새까지도 떠올리게 되죠. 여행의 욕망이 꿈틀거리는 순간입니다.
사실 저는 영국에서 생활하다 코로나로 인해 반강제 귀국한 이후에는, 도쿄를 제외하곤 특별히 가고 싶은 도시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F1으로 인해- 다시 세계지도를 펼쳐보게 된 셈이지요. 서킷이 있는 도시라는 이유만으로 바쿠의 바닷바람이 궁금해졌고, 모나코의 좁은 골목이 다른 시선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F1은 단순한 목적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가야 할 이유와 배경, 그리고 이야기를 선물해 줍니다. 서킷이 품은 사연을 알고 나면, 그 도시는 더 이상 '지명'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이 얽힌 공간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언젠가 다시 찾게 될 영국에서는, 런던에 뒤이어 반드시 실버스톤 서킷에 발을 디뎌보고 싶은 욕심이 있네요!
마지막으로, 저는 F1을 통해 제 안의 질주 본능을 처음으로 자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이드 바이 사이드, 휠 투 휠.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벌어지는 추월전,
0.0X초의 간극으로 갈리는 승부.
F1의 레이스는 단지 빠르다는 차원을 넘어서, 보는 이의 숨결까지 조율해 버리는 리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 스피드는 단순히 얼마나 빠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확성, 용기, 집중력, 판단력 그리고 결단력이 집약된 인간 능력의 총합이며, 그 안에는 본능을 제어하는 지능, 감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훈련, 그리고 한계선을 넘나드는 정신력까지 담겨 있습니다.
F1은 매 레이스마다 말합니다.
가장 빠른 사람이 아닌, 가장 완전한 사람이 승리한다
이 속도는 사람을 들뜨게 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순수한 상태로 데려다 놓습니다.
달리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마치 내가 그 안에 있는 듯한 감각.
내가 움직이고, 떠오르고, 살아 있다는 어떤 명료한 실감.
스피드란, 어쩌면 본능과 이성이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접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을, 최근 영화 <F1: 더 무비> 속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 분)가 아름답게 표현합니다.
"Sometiems there's this moment when I'm in the car when everything is peaceful and no one can catch me. In that moment, I'm flying."
"가끔 그런 순간이 있어요. 나는 차 안에 있고, 모든 게 고요하고 평화로워요.
그곳에선 그 누구도 날 따라잡을 수 없어요.
그 순간, 나는 운전하는 게 아니라... 날고 있는 거예요."
<F1 : 더무비>中 소니 헤이스
그는 단지 속도를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속에는- 자신이 가장 온전히 존재하는 순간,
그 안에서 몰입하며 자유로워지는 내면의 정적이 담겨 있었습니다.
속도는 처음에 낯설지만, 어느 순간부터 삶의 감각과 아주 많이 닮아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가장 깊이 몰입했던 순간을 지나 뒤돌아보았을 때야 비로소-
저만치 먼 거리를 달려와 지금 이곳에 다다른 자신을 마주하게 돼 듯 말이지요.
그렇기에 소니 헤이스의 말처럼, 우리가 이 스포츠를 사랑하는 진짜 까닭은- 아마 이 때문일 것입니다.
가장 뜨겁게 몰입한 그 순간이,
가장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이기도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