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잘 입어야 한다는 압박
요즘은 패션을 잘 입어야 한다는 압박이 크다.
혹시나 내가 못 입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남의 시선이 나를 평가할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인구 5천만의 사회 속에서
우리는 늘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워져 살아간다.
주관식보다 객관식이, 정답이 정해진 문제들이 익숙하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틀리지 않기 위해 산다.
한국 사회의 수직적인 문화, 서열주의, 비교의식 같은 것들이
결국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든다.
이런 환경에서는
조금이라도 실패하면 곧바로 ‘낙오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 좌절감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패를 피하기 위해
안전하고 무난한 선택만 반복한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학생 때부터 우리는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다른 친구의 옷이 부럽기도 하고,
누군가의 스타일을 보며 ‘멋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패션보다 공부를 우선시한다.
공부가 곧 미래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션은 ‘사치’로 여겨진다.
패션이 단지 옷에 불과하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삶의 여유가 없다면,
패션은 분명 사치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그제야 패션은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가 된다.
요즘은 딩크족이 늘고,
한 명만 낳는 시대가 되었다.
삶의 방식이 다양해진 만큼,
패션의 해석도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정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패션은 정답이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건 예술에 가까운 경험의 축적이다.
음악, 미술, 철학, 브랜드의 역사, 전시회, 사람들과의 대화 —
이런 것들을 함께 경험하지 않으면
결국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게 된다.
주말엔 무료 전시회에 가보라.
매장에 들어가서 직접 옷을 입어보라.
사지 않아도 된다.
관심 있는 인플루언서에게 DM을 보내보라.
답장이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시도 자체가 이미 한 걸음의 도전이다.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라.
게임, 애니, 책, 소설, 산책, 카페 등등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꺼내보면
그 안에 이미 나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있다.
라이프 스타일에 중점적으로 맞춘다면 훨씬 더 의류를 재밌게 입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패션은 공부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경험과 시간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공부’라는 타이틀을 잠시 내려놓고,
예술로서의 패션, 그리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찾으면 된다. 조급할 필요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한번 알아보고 재밌게 배우면 된다.
잘 입는다는 욕심은 끝이 없는 욕심인 거 같다.
욕심은 또 다른 것을 부르는 거 같다.
나에 대해서 찾아가는 여정이 나에겐 패션이었다. 그 길은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취향도 바뀌고 생각도 바뀌고 답답함을 가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