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한 이유 그리고 패션을 선택한 이유 1편
퇴사를 하는 이유는 각자 다르다.
회사 일이 힘들어서일 수도 있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승진해서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적어도 행복할 것이고, 일에 대한 몰입감도 더 높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
회사가 원하는 일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가 전부였다.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방법은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모르면 눈치로 배워야 한다. 처음이면 모르는 게 당연한데도, 회사는 1~3년 다닌 선배들과 나를 비교하며 단기간에 폭풍 성장을 하길 바랐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면 차라리 사업을 하지, 굳이 남 밑에서 일할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부서 이동이 잦았고, 권고사직까지 겹치면서 하루도 안 되어 내 삶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힘들었고, 지쳐 있었다.
일이 끝나면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자기계발은 귀찮았고, 더 힘들었다. 회사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니, “굳이 더 해야 하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렇게 내 꿈과 점점 멀어져가는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는 마치 윗사람들의 체스판 위 말 한 칸에 불과했다.
앞으로 두 칸 가라면 두 칸을 가야 하고, 대각선으로 이동하라면 그 방향을 맞춰야 했다.
머릿속에는 ‘매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약이 떠올랐다.
나는 계속 파란약만 먹고 있었다.
빨간약을 먹고 ‘이 회사가 어떤 미래로 흘러갈지’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몸도 버티지 못했다.
잦은 부서 이동, 새로운 업무, 새로운 환경, 새로운 인간관계…
더 좁고 답답한 조직으로 이동했고, 규모는 작았지만 일이 훨씬 더 타이트했다.
퇴사율도 높은 곳이었다. 일주일 정도 해보고 퇴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버티기 힘들었다. 이 부서로 간 것 자체가 사형선고와 다를 바 없었다. 일을 잘하고 노력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었다.
좋아하는 일이니까 버텼을 뿐이다.
좋아하지 않는 일이었으면 몇 달 만에 나왔을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관계는 좋았다. 특히 또래들과는 편했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상사들과는 잘 맞지 않았다.
나는 패션을 좋아해서 좋아하는 바지를 입고 싶었지만, 그 상사는 인정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받아들이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을 잘하면 일이 더 몰리고,
일이 많으면 실수도 생기고,
실수하면 지적이 들어오고,
결국 관료제의 분업이라는 건 이런 회사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정작 필요한 건 ‘일당백을 원하는 직원인데’,
실제로는 일 잘하는 사람에게만 업무가 몰리고,
일을 안 하는 사람들이 더 편하게 월급을 가져가는 구조였다.
우리는 그 사실도 모른 채 묵묵히 성실하게 일만 하고 있었다.
회사라는 진실을 알면 알수록
나는 여기서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는 걸 느꼈다.
이곳에서는 미래가 없었다.
평생 부서 이동하다가 어느 날 잘릴 것 같았다.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나 같은 평사원이 조직문화를 바꾼다는 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또래 직원들은 나를 좋아해주었다.
경쟁상대로 보기보다는
‘일하는 시간만큼은 즐거웠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었다.
사람 관계의 피로도가 어떤지 잘 아니까 더 잘하려고 했다.
하지만 위의 상사들은 달랐다.
나에게 더 따끔하게 지적하기를 원했고,
잔소리를 더 하라고 가르쳤다.
그건 내 성격이 아니었다.
왜 그 성격을 억지로 맞춰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부서 이동, 부서 통폐합, 일방적인 야근,
원하는 날에 쓸 수 없는 연차…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취업을 ‘눈 낮추라’고 조언할 수 있을까?
그런 회사를 다녀보면 다시 취업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오히려 모아둔 월급보다 병원비가 더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단지 ‘조직과 맞지 않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조직이 원하는 성향·성격·업무 스타일과 달랐을지도 모른다.
퇴사가 두려웠고, 재취업이 어려울 걸 알았지만
건강이 무너져 가는 걸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무계획 퇴사를 하려던 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보자’라는 선택이었다.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회사에서 일하다가 지쳐 쓰러지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쓰러지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참으라고 해서 참았지만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왜 참아야 하는지 이유를 물어보면
돌아오는 말은 ‘불경기라서’, ‘취업이 안 돼서’뿐이었다.
나도 그 이유 때문에 버텼지만
회사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특정 사람에게 업무 과중과 불이익이 쏠리는 구조라면,
내가 먼저 나가야 내 건강이 조금이나마 회복될 것 같았다.
돈이 없으면 힘든 건 맞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패션을 시작한 것도 내가 좋아서였다.
내가 고른 옷을 누군가 지적할 일도 없고,
원하는 만큼 성과를 낼 수 있고,
내 속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사 전에 ‘문제가 나에게 있는가, 조직에 있는가’를
혼자 나름대로 분석했다.
혹시 내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퇴사율이 높은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사소한 행동일지라도
만약 내가 나중에 사업을 하거나
1인 기업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어떤 부분에 맞고,
어떤 부분에 맞지 않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조직이 어떤 상태인지 객관적으로 분석
할 필요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게을러서 ? 참을성이 없어서?
재무재표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 라고 여쭙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