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0일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 날,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해방감과 공허함.
25년 동안의 회사 생활에서 나는 꽤 많은 것을 얻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의 명함, 안정적인 연봉,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 프로젝트들, 그리고 수없이 찍힌 출입국 도장들. 누군가 보기엔 ‘성공적인 커리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계속 내 사업, 내 이름을 건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언젠가’는 생각보다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하필이면 코로나가 세상의 속도를 늦추던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멈춰 설 때, 나는 오히려 시작했다. 첫 사업은 예상보다 잘 풀렸다. 시장은 불안정했지만, 방향은 맞았고 실행은 빨랐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문제는 사람이었다. 함께 시작했던 동업자는 수익을 나누지 않았다. 말로 해결될 거라 믿었던 일은 결국 법정으로 갔고, 그 싸움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1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소송은 결국 3년을 넘겨 올해 초 2심 판결이 났다. 사업은 계속했지만, 온전히 몰입할 수는 없었다. 에너지는 분산됐고, 성장은 멈췄다. 돈도 크게 벌지 못했다. 무엇보다, 처음 회사를 만들 때 품었던 기대와 설렘이 조금씩 닳아갔다.
그 사이에 뜻밖의 것이 내 삶에 들어왔다. 브리지였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이 게임은 이상하게도 사람을 끌어당긴다. 계산과 심리, 파트너십과 신뢰가 동시에 작동하는 세계. 나는 점점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업이 흔들리며 생긴 ‘시간’이 나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강사 자격도 따고 클럽 디렉터 자격도 얻었다. 돈을 내면서 배우러 다녔는데 이제 돈을 받으며 가르치러 다닌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을 모색 중이다. 바로 시니어 모델, 배우의 길이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 단 한 번도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오히려 아나운서나 기자가 되고 싶어 언론고시라고 하는 방송국 입사 시험을 두 번이나 봤다. 그런데 인생이 한 바퀴 돌아온 지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하고 있다. 단역 배우 오디션을 보고, 시니어 모델 모집 광고에 지원하면서 발성과 감정을 배우는 연기 수업을 듣는다.
이 변화의 시작에는 다른 사람의 데뷔 준비를 도와주며 그 세계를 가까이에서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내가 카메라 앞쪽에 서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의 나는 신인도, 유망주도 아니다. 그냥 늦은 출발선에 선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이제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을까.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계획대로만 흘러갔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라는 걸 안다. 25년의 회사 생활, 한 번의 창업, 그리고 예상치 못한 분쟁.
그 모든 과정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 다른 시작점에 서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늦었다고.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이건 ‘늦은 시작’이 아니라, ‘세 번째 인생’의 시작이다. 이 이야기가 어디로 갈지는 아직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번에는, 조금 더 나답게 살아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