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7일
(매일 쓸 계획이었는데 어제 연재를 누락했다....ㅠ.ㅠ)
처음 카드를 잡은 건 2023년 12월이었다. 당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 종목에 대한 기사가 검색되어 호기심에서 시작한 브리지였는데, 불과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꽤 멀리 와 있었다. 게임 하나가 이렇게 사람을 데려갈 수 있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돌이켜보면 나는 플레이어이기 전에 기록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네이버 블로그에 브리지 이야기를 하나둘 쌓기 시작했고, 브런치에 연재했던 첫 번째 책 역시 브리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이론을 정리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지만, 쓰다 보니 내 생각이 정리됐고, 그 과정에서 내 이해도도 함께 깊어졌다. 더 나아가 입문자를 위한 책을 독립 소량 출판으로 만들어본 경험도 있다. 누군가의 ‘첫 브리지’를 돕는다는 건 생각보다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2024년은 말 그대로 ‘움직임의 해’였다. 미국으로, 일본으로, 싱가포르로. 대회에 참가하기도 하고, 현지 클럽에서 플레이를 하기도 하면서 브리지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하나의 세계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같은 규칙을 공유하지만, 테이블마다 다른 공기와 리듬이 흐른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낯선 도시에서 처음 만난 오포넌트와도 카드로 소통하고 경쟁하는 경험은, 생각보다 깊은 연결감을 만들어냈다.
그해 11월, 라스베이거스 NABC에서 브리지 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처음에는 ‘내가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컸지만, 배우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배움이었다. 설명하려면 더 정확히 알아야 했고, 단순히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아는 것을 잘 전달하기 위해 교수법과 테크닉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 과정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먼저 강사 과정을 수료한 것이 어쩌면 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작년 3월, 한국브리지협회 강사 과정을 마쳤다. 한국의 강사과정은 아직 발전해야 할 필요성이 많다.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브리지 실력과 이론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가르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강사과정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완주에 있는 한 중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브리지 수업을 맡게 되었다. 처음 카드를 잡는 학생들을 보며, 1년 전의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규칙을 이해하는 데서 오는 작은 성취감, 파트너와 처음으로 신호가 통했을 때의 눈빛. 그 순간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이후 백화점 문화센터,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이어지며 강의 경험은 조금씩 쌓여갔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같은 게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누군가는 전략에 몰입했고, 누군가는 사람과의 소통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다행히도 가르치는 학생들이 모두 브리지에 큰 흥미를 갖게 되고 계속해서 공부와 플레이를 이어가려고 한다는 것이 나에게 더 큰 보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올해 3월, 한 스텝 더 나아가기 위해 클럽 디렉터 과정을 수료하고 자격증 시험에 응시했다. 24명의 수강생 중 유일하게 합격했다는 결과를 들었을 때, 기쁨과 동시에 묘한 책임감이 따라왔다. 이제 나는 단순히 플레이어가 아니라, 게임을 운영하고 균형을 맞추는 역할까지 맡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은 실습도 해야 하고 공부도 더 해야 하지만 이루어 낸 것에 대해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돌아보면 꽤 많은 것을 해낸 것 같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여전히 어렵다. 바로 ‘플레이’다. 이론을 배우고, 가르치고, 운영하는 것과는 또 다른 영역. 매 판마다 다른 상황, 예측과 선택, 그리고 그 결과를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순간들. 머리로는 알지만 손이 따라주지 않을 때의 답답함은 여전히 크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카드를 한 장 한 장 놓으면서, 내가 왜 이 게임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되짚는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기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중이다.
어쩌면 브리지는 결국 그런 게임인지도 모르겠다. 완벽해지기보다는, 계속해서 배우고 흔들리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게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시 테이블에 앉는다.